사청사우 - 아, 그렇습니까

동우 | 기사입력 2017/03/28 [21:10]

사청사우 - 아, 그렇습니까

동우 | 입력 : 2017/03/28 [21:10]
▲     © 시흥장수신문

 

 

乍晴乍雨雨還晴

잠깐 개이다가 잠깐 비 오고, 비 오다가 다시 개이니

天道猶然況世情

하늘의 이치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세상의 인정이랴

譽我便是還毁我

나를 칭찬하는가 하더니 곧바로 다시 나를 헐뜯고

逃名却自爲求名

명예를 피하는 척 하더니 도리어 명성을 구하네

花開花謝春何管

꽃이 피고 진들 봄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雲去雲來山不爭

구름이 흘러가거나 오거나 산은 다투지 않는다네

寄語世人須記認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반드시 기억하시라

取歡無處得平生

기쁨을 얻는다 한들 평생을 누릴 곳은 없다는 것을

 

 

절집에서 큰 방 생활이라 함은 대중 여럿이 한 방 안에서 공동생활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강원 시절만 해도 두 학년 전체인 120명이 그야말로 방에서 다함께 공부하고 공양하고 일하고 취침해야 했다. 삭발한 지 얼마 안 된 출가자들이 새로운 생활 습관을 익히고 제련되는 용광로라고 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일거수일투족의 행보는 반드시 그 누군가에 의해서라도 발각?되게 마련이다. 그러니 초보 중노릇을 시비하는 구설 거리가 끊임이 없다.

 

김시습의 이 시는 그러한 강원 시절, 계간지인 운문에 실을 시를 찾다가 눈에 띈 것이다. 무심한 봄처럼, 초연한 산처럼 용광로의 풀무질을 감내할 밖에...

세간의 흐리락 개이락 하는 인정 속에서 참 수행자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 결정적으로 나를 감동시켰던 저 백은선사의 일화도 있지 않은가.

 

 일본의 고승인 백은(白隱)선사가 살고있는 동네에 한 처녀가 어느 날 임신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 몹시 화가 난 처녀의 부모는 딸에게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심하게 추궁하였다. 처녀는 겁에 질려 입을 열지 못하다가 결국 위기를 모면하고자 모든 이들이 존경하는 백은선사가 아이의 아버지라고 거짓 고백을 하였다. 처녀의 부모는 그 길로 당장 백은선사에게 달려가서 우리 딸이 당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며 험악한 기세로 따졌다. 그러자 백은선사는 아무런 변명도 없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그렇습니까.”

 

그리고 얼마후 아기가 태어나자 처녀의 부모는 당신이 아버지이니 아기를 키우라며 백은선사에게 맡겨버렸다. 백은선사는 더 이상 존경받던 고승도 아니고, 추잡한 난봉꾼에 불과하다는 더러운 오명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가지가지 추악한 욕설을 들으면서도 백은선사는 젖동냥을 다니면서 아기를 잘 키워 나갔다.

 

일년이 지났다. 처녀에게는 십년보다 더 길고도 괴로운 시간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처녀는 마침내 부모에게 아기의 진짜 아버지는 이웃 마을 청년이라고 털어 놓았다. 처녀의 부모와 처녀, 그리고 친부인 청년은 백은선사에게 달려가 용서를 빌며 아기를 돌려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백은선사는 순순히 아기를 내어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그렇습니까.”

 

왜 변명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백은 선사는 자신이 사실대로 밝히면 처녀와 뱃속의 아기 모두가 당장 큰 곤란을 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다.

 

라는 아상에 대한 집착 없는 자재함이며, 자신의 결백과 명예보다 더 중요한 것을 생각한 자비심이다. 선한 사람은 변명하지 않으며, 변명하는 사람은 선하지 않다고 했던가.

 

누명은 고사하고 빤하게 밝혀진 잘못에 대해서조차 끝끝내 인정하지 않는 목전의 세태들을 보면서, 백은선사와 같은 저 간결하기 짝이 없는 긍정의 대답 한 마디가 사무치게 그립다. 장황한 변명으로 맞서는 것이 오히려 일파만파의 파문을 일으켜 서로를 진흙 구덩이에 몰아 넣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구차해지지 말자는 말을 오늘따라 이렇게 길고 구차하게 늘어 놓는 것을 보니 분명 나도 선하지 못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 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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