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춘흥 - 사무치는 추위를 딛고선 향기

동우 | 기사입력 2017/03/07 [19:18]

매화 춘흥 - 사무치는 추위를 딛고선 향기

동우 | 입력 : 2017/03/07 [19:18]

 

 

 

 

 

 

▲ 운문사 봄풍경사진     ©운문사

 

塵勞逈脫事非常

티끌 번뇌의 세상에서 벗어남이 보통 일이 아니니

緊把繩頭做一場

고삐줄을 단단히 잡고서 한바탕 뒤쳐 볼지어다

不是一番寒徹骨

추위가 한번 뼈에 사무치지 않는다면

爭得梅花撲鼻香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의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 

 

 

제일 일찍 봄소식을 전해주는 산신각 앞의 청매를 보며 매년 한 번씩은 떠올리는 황벽선사의 시다. 아마도 출가한 스님이라면 절집 안에 들어와 이 구절을 읊조리며 비장하게 견뎌온 시절들이 있었으리라.

 

겨울을 뚫고 용감하게 피어나는 매화 꽃잎은 거의 매년 시샘 추위의 된서리를 맞는다. 새벽 도량석을 돌 때 슬며시 다가오는 매화향은 시샘을 받을 만큼 정말 충분히 매혹적이니까... 무언가를 얻기 위한 고군분투는 늘 고단해 보인다. 이 시를 쓴 황벽선사 역시 매서운 극기의 세월을 거쳤을 것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던 황벽선사는 어려서 도벽이 있었다고 한다. 특별히 필요해서가 아닌 습관이었다. 결국 어머니에게 들통이 나고 이를 훈계하는 황벽선사 어머니의 가르침은 하나의 큰 일화가 된다.

 

훔치는 행위에는 세 가지가 있느니라. 첫째는 작은 것을 훔치는 것이니 네가 지금까지 훔쳐 온 가축이나 일상에 필요한 집기 따위를 훔치는 것이요, 둘째는 큰 것을 훔치는 것이니 나라를 훔치는 것으로 한 나라의 통치자가 되는 것이며, 셋째는 천하를 훔치는 것이니 모두를 버리는 것이니라. 작은 것을 훔치면 양심을 좀먹는 것이요, 큰 것을 훔치면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거나 잘 살게 하는 것이니 이는 모두 세간의 일이요, 천하를 훔치는 것은 모든 중생을 윤회에서 건지느니라. 모두를 버릴 때 모두를 얻는 것이니 황벽아! 너는 어떤 것을 훔치고 싶으냐?”

 

이에 황벽은 천하를 훔치겠노라 말하고 출가하였다 한다나라를 훔치기 위한 작금의 악전고투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고단한 것을 보면 천하를 훔치겠다는 호언을 이루려는 각고의 노력은 또 어떠할지 말할 필요가 없겠다. 물론 잡으려는 안간힘과 모든 것을 놓으려는 수행은 그 모양새가 천지현격일 테지만.

 

이왕 모든 것에 지불해야 할 몫이 존재한다면 좀 더 가치 있는 것을 위한 것이어야 할 테다. 매화의 향기만큼 사람을 매혹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악취나는 어떤 것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봄의 전위로 피어나는 매화 앞에 서서 여전히 한바탕 뼛속을 뒤치지 못한 출가자의 도정을 점검해 본다.

 

 

 

 

 

 

최영숙 17/03/07 [20:26] 수정 삭제  
  동우 스님! 반갑습니다. 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옷깃이 여며집니다. "잡으려는 안간힘과 모든 것을 놓으려는 수행" 사이를 어정쩡하게 서 있는 모습을 봅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 반갑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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