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돌봄을 품다

민정례 | 기사입력 2020/06/12 [16:55]

마을, 돌봄을 품다

민정례 | 입력 : 2020/06/12 [16:55]
누군가 마을공동체를 영화 ‘웰컴투 동막골’의 포스터를 통해 설명한 적이 있다.  포스터에 나타난 동막골의 사람들은 다양하다. 지혜를 주는 어른도 있고, 천방지축 뛰노는 아이들도 있다. 약초를 캐거나 밭을 경작하는 경제활동인구도 있었고, 살림을 맡은 아낙네도 있었다. 
 
그들은 감자밭을 공동경작하면서 생산활동을 하기도 하고, 맷돼지가 밭을 헤집는 공동의 문제를 촌장의 집 마당 평상에 모여 해결책을 모색하기도 했다. 오늘날 마을 공동체 활동이다.
 
아이들은 낮이고 밤이고 이집 저집 몰려다니며 동네를 활개치고 다닌다. 부모가 일나간 아이들을 이집 저집에서 함께 먹이고 돌봐준다. 오늘날 공동육아다.
 
사진 속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보이는 사람은 ‘미친년’ 역할을 맡았던 강혜정이다. 예로부터 동네마다 미친사람이라 불리는 사람이 한 명씩은 꼭 있어왔다. 강혜정이 온전치 못한 정신임에도 마을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마을 사람들이 품어줬기 때문이다. 오늘날 돌봄의 영역이다. 
 
이처럼 예전에는 육아와 돌봄, 경제활동과 복지 등 오늘날 공공기관에 맡긴 거의 모든 기능들이 마을 안에 있었다. 오늘날 마을만들기는 개인주의로 단절된 마을의 기능을 되살리는 일일 것이다.
 


마을, 초등돌봄을 시작하다
최근 아동돌봄의 영역이 마을 사업으로 들어왔다.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학교에서 시행하던 ‘방과후 돌봄’ 사업이 맞벌이 부부의 부담을 여전히 크게 덜어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돌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지역 중심의 돌봄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다함께돌봄사업’을 추진했다. 시흥시에서는 ‘아이누리 돌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출산 이후에도 경력을 이어가는 여성들에게는 여러번의 고비가 찾아온다. 어린이집 적응시기, 아이가 아플 때 등 수많은 위기를 넘기며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애쓰지만 가장 큰 고비는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한 이후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퇴근 때까지 돌봄이 가능하지만 초등학생의 하교 시간은 한낮이다. 챙겨야 할 것도 많고 학부모로서 역할도 많아지만서 그간 참아왔던 것이 무너지는 순간이 초등학교 1학년 때다. 
 
시흥시에서 시행하는 아이누리 돌봄사업은 초등학교 1~6학년을 대상으로 하지만 대부분 돌봄나눔터와 센터에서는 1~2학년을 중심으로 모집한다. 그만큼 초등 저학년 돌봄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마을 공동체 활동이 사업이 되었다

  © 민정례


평생학습마을학교나 희망마을만들기 등을 통해 마을공동체 활동을 해오던 모임들은 ‘마을에서 함께 아이를 키우자’는 취지에 적극 공감하며 동참했다. 이에 따라 공모사업이 시작된 지난해에는 열 개의 돌봄나눔터가 만들어졌다. 매화동 희망센터마을학교, 목감동 삼호꿈마을학교, 월곶동 달빛포구마을학교, 장곡동 행복한숲속마을학교 등은 기존에 마을공동체 활동을 해왔던 조직들이다.
 
소모임이나 동아리, 프로그램 운영 등 자율적이고 관계 중심으로 이뤄졌던 마을활동이 돌봄사업을 계기로 사업적인 면모를 띠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마을 공동체 활동의 사업화 시도는 꾸준히 있어 왔다.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동네관리소가 생겨나기도 했고, 모임 구성원들이 잘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다 전통장 만드는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초등돌봄 사업은 지금껏 사업으로 확대됐던 다른 활동들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아이들에 대한 돌봄과 교육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에 누군가 고정적으로 자리를 지켜야 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기에 책임이 강화됐다. 활동가들에게 돌봄사업은 마을활동도, 봉사활동도, 직장도 아닌 애매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돌봄의 영역을 시작했다는 것은 의미있지만 마을활동이 늘 그렇듯 일한만큼의 보수규정이 없다.활동과 봉사와 보람에 의미를 둬야 한다. 돌봄나눔터도 보조금 내에서 인건비 지급 규정이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시에서는 돌봄나눔터 종사자들에게는 소정의 활동비를 지급하지만 업무량에 비해서는 적은 금액이다.
돌봄나눔터와 돌봄센터의 차이점은 인건비 지급, 공간, 정원 등이다. 돌봄센터에서는 센터장 200여 만원, 돌봄교사 100여 만원의 급여가 지급된다. 센터는 공간도 더 넓고 돌봄 대상자도 25명 정도로 더 많다. 공간과 정원 규모의 차이일 뿐이지 역할과 내용은 같다.  
 
마을돌봄-학교와 마을,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좋다
마을에서 아이를 돌봐준다는 것은 방과후 돌봄교실 등을 운영하는 학교의 부담도 덜어주는 일이다. 지난 겨울 군서초등학교는 방학 중 석면공사를 하게 되면서 돌봄교실을 운영할 수 없게 됐다. 학교와 교육청과 마을 사람들이 협의해 돌봄교실은 학교 인근 경기꿈의학교 아시아스쿨로 이동했다. 아시아스쿨을 위탁받은 사단법인 더불어함께가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이 돌봄을 맡았다.
 
김태숙 군서초 교감은 "학교와 가까운 마을 안에 안전한 장소가 있어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었다”라며 “마을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니 학교의 부담이 많이 줄었다”라고 말했다.
 
학교의 방과 후 돌봄교실은 학교와 학부모, 아이들 모두 부담이 가는 면이 있었다. 학교는 일과 후에도 학교 시설을 운영해야 하는데 그에 따른 인력과 시설과 위험상황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 일과를 마친 후에도 남아 하루종일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제일 중요한 학교 돌봄은 오후 다섯 시까지만 운영돼 학부모의 퇴근시간과 맞지 않아 거기에서도 공백이 발생했다.
마을돌봄의 가장 큰 장점은 집 가까운 곳에 아이를 맡길 수 있고, 퇴근길에 들러 아이와 손잡고 집에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돌봄의 영역이 마을 사업으로 들어온 것은 마을 전체 공간 활용 측면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마을 안에는 주거지와 상업시설이 주를 이룬다. 공공시설은 동 주민센터, 파출소 등 꼭 필요한 시설들이다. 마을안에 상업시설도 공공시설도 아니면서 공공이 이용하는 공적인 장소가 생겨나는 것은 마을의 큰 자산이다. 김봉덕 장곡동 돌봄나눔터 돌봄교사는 “장곡동에 동 주민센터나 문화체육센터, 어울림센터 등을 제외하면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공적인  공간이 별로 없는데 여기 마을학교가 공적인 공간이 되어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마을 돌봄이 자리잡으려면
마을 돌봄 사업은 마을 공동체 활동 영역의 확장이다. 소규모 모임 중심의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의 마을을 주제로 한 비영리활동이 약간의 영리성을 띤 사업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는 마을 활동이 사업으로 확장되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초등돌봄 사업은 수요가 커 앞으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마을에서는 앞으로 초등돌봄 뿐만 아니라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돌봄까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초등돌봄 종사자들의 처우개선, 서류 간소화 등 개선해야 할 지점도 있다. 그와 동시에 마을에서도 ‘돌봄’에만 중심을 두기 보다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돌봄을 넓은 의미의 교육 활동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다툴 때, 기분이 안좋을 때, 화가 났을 때, 규칙을 지키지 않을 때 등 여러 돌발 상황에 교육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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