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과 이별하다

김민지(김순기) | 기사입력 2020/03/09 [11:47]

책들과 이별하다

김민지(김순기) | 입력 : 2020/03/09 [11:47]

 

  © 김민지(김순기)

 

천이백 권의 책과 바꾼 것은 만 오천 원짜리 수박 한 통과 직접 가꾸었다는 상추 치커리와 아욱이었다.

 

꿈이 있었다. 나이 육십 정도가 되면 북카페를 하겠다는 야무진 나의 계획. 카페에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들을 진열해 놓고 손님과 공유하겠다는 꿈북카페를 하지 못하면 내가 사는 집을 이웃들에게 오픈해서 함께 책 이야기도 하고 빌려 주기도 하는 꿈을 가졌다. 그 꿈이 한순간 사라졌다.

 

삼십 년 가까이 책을 모았다. 그동안 버린 책과 이웃들에게 나누어 준 책도 많다. 그리고 아끼는 책이 천팔백 권 정도였다.

소파 놓을 자리에 책이 차지하였고 방마다 책이었다. 집수리 못한 변명을 하자면 책 치우는 일이 번거로웠다. 책이 많다고 해서 뿌듯하거나 보기 좋다 하는 마음은 없었다. 두 딸과 내가 책을 좋아해서 그저 사서 읽고 놓아둔 것이 꿈을 꾸게 했다.

 

어느 날 몸이 아팠다. 그리고 우울하고 짜증이 났다. 그때 내 눈을 거슬리게 하는 게 책이었다. 저 많은 책을 읽었으면 뭔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도 들고, 마치 주객전도 된 것처럼 우리 집 모양새가 그러하였다. 그 모양새가 갑자기 내 눈에는 가시로 보였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책을 읽지 않았다. 종이책과 멀어진 이유가 돋보기를 끼고 봐야 하고 눈의 피로를 빨리 느꼈다. 그 무엇보다 오디오북을 선호하게 되었다. 여행 갈 때, 잠자리 들기 전 주로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평소 읽지 않았던 우리나라 단편소설‘ 100인의 배우, 우리나라 문학을 읽다.’라는 책은 usb를 사서 들었다. 오디오 북으로 듣다가 괜찮다 생각이 들면 도서관에 가서 빌려다 읽었다. 내가 책과 멀어진 사이 책에는 먼지만 쌓여갔다. 사실 살아오는 동안 책은 친구이면서 위안이고 내 자존감을 높이는데도 일조했다. 지금도 혼자의 시간을 채워주는 것은 책이다.

 

  © 김민지(김순기)

 

가시가 된 책은 쉽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면장갑을 꼈다. 그리고 책을 책꽂이에서 빼서 거실에다 던졌다. 그렇게 정리한 책이 구백권 정도다. 우선순위가 읽기 쉬운 책과 단편소설들은 살아남았다. 그중 삼백 여권의 책을 정리해서 알라딘으로 팔러 갔다. 책값으로 십이만 원 현찰을 받았다. 알라딘 책방을 구경하다가 만 이천 원을 주고 톨스토이의 단편 2권과 이솝우화 책을 샀다. 책을 들쳐보니 읽지 않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사 관계로 다시 책을 정리했다. 손자 손녀가 생기면 두 딸이 어린 시절 읽었던 전집들이다. 나름 참 깨끗하게 보관하였다. 표지를 닦으니 새 책으로 변신하였다. 시집갈 생각을 않으니 갖고 있기 부담스러워 딸기 한 팩과 바꾸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지하에 중고서적이 있다.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그냥 가져가라 했는데 굳이 수박도 사다 주고 딸기도 사다 주었다.

 

처음에는 비워 있는 책꽂이를 보면 썰렁해 보였지만, 이내 마음의 여유로 편안함을 느꼈다. 그 여유 틈으로 그동안 읽었던 책이 어른거렸다. 빈 마음 곳간에다 또 다른 책들로 채워 갈 것이다.

나와 이별한 책들이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사람들한테 힐링이 되고 친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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