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림동사

북시흥농협 과림지점

심우일 | 기사입력 2019/09/11 [18:50]

과림동사

북시흥농협 과림지점

심우일 | 입력 : 2019/09/11 [18:50]

 

1. 북시흥농협 탄생과 발전

 이동단위조합의 합병을 통한 좀 더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기구를 바탕으로 경영기반을 확대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고자 1969년부터는 이동단위조합을 읍면단위조합으로 합병 및 확대하기 위한 단위조합 자립5개년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부천군 소래면에서도 각 리에 소재하던 20개 리단위조합이 합병을 하여 소래면단위농업협동조합이 19691010일 탄생하게 된다.

 이후 197088일 소래단위농협은 사무실과 연쇄점 72평을 완공하여 업무에 들어가면서 농촌지역 경제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19701226일에는 처음으로 14평 규모의 자그마한 소래농협 도창 지점이 생긴다. 아울러 100평짜리 양곡창고 1동과 14평 넓이의 공제의료원도 탄생하여 농민을 위한 금융, 의료, 벼수매 및 비료 공급 등의 서비스를 개시한다.

 1973419일 소래농협에 농기구수리센타가 설치된다. 이는 농림부가 새마을 사업을 촉진하기 위해서 경운기, 방제기, 양수기, 탈곡기, 건조기 등 농기계 공급을 확대해가고, 이와 보조를 맞추어 전국 150개소에 농기계훈련 및 수리센타를 설치하면서 이루어진 조치이다.

 197831일 자립조합으로 승격한다. 1970년대는 조직, 사업, 재무, 관리면의 발전수준에 따라 자립, 준자립, 지원, 준비의 4단계로 단위조합을 구분하여 그에 걸맞는 육성책을 도모하여 단계적으로 자립하도록 유도해갔다. 소래단위농업협동조합은 최상위 단계인 자립조합에 이르렀던 것이다.

1980215일에는 자립봉사조합으로 승격을 하게 된다. 이후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200911일 클린뱅크 인증서를 수상했다. 클린뱅크는(Clean Bank)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10%를 넘어서 원금과 이자를 거둬들이기 어려운 부실채권을 거의 갖고 있지 않고 재무구조가 건전한 은행을 지칭하는 것이다.

 2010년에는 명칭을 북시흥농업협동조합으로 변경하였다. 2013년 현재 2년 연속 클린뱅크 인증서를 받았고, 상호금융 예수금 5천억 달성이라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20133월 현재, 8개의 본지점사무소와 115명의 직원이 시흥지역 농업인을 비롯한 지역민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 시흥시 대야동에 소재한 북시흥농협 본점의 과거 모습(북시흥농협 제공)     © 심우일

 

2. 과림분소(과림지점) 개소

 1971522일 과림분소(현재 북시흥농협 과림지점)가 개설된다. 52평의 사무실 규모이며, 100평짜리 양곡창고도 같이 준공되어 과림동 지역 농민들을 위한 업무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농협도지부 관계자가 이런 벌판에 농협을 짓냐?”고 할 정도로 과림분소가 위치한 지역은 매우 낙후된 곳이었다.

 초대 과림분소 분소장은 과림3리 리동조합장이셨던 송희리(87)씨였다. 그는 과림3리 이장을 하면서 196910월에 이동조합이 통합되어 소래단위조합이 탄생할 때의 주역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16년간 소래농협에 근무하다가 정년퇴직을 하셨다. 과림분소 사무실은 당시 송규진, 양곡창고는 송희일씨 소유의 땅이었으며, 소유주가 거의 희사하다시피 할 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 소래농협과 매매 계약을 체결하였다. 당시 분소장이셨던 송희리씨는 사무실은 약 50여평 이었는데 다 사무실로 쓴 것은 아니였어. 20평 정도만 사무실로 쓰구, 나머지 30여평은 비료, 농기계 등 농자재 창고로 썼어. 또 지금 사무실 앞에 있는 양곡창고는 100평인데, 그거는 AID차관 350만원으로 지은거여라며 당시의 상황을 말씀해주셨다.

 AID(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는 국제개발청(國際開發廳)으로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을 위해 미국이 제공하는 장기융자의 하나인데, 정부에서는 창고 건립을 위한 3개년 계획을 세워서 1970년대 초에 AID차관으로 창고를 짓기 시작했다. 그런 창고 중의 하나가 과림분소에 있던 양곡창고였다.

 송희리씨는 박정희 대통령시절에 통일벼 35백가마를 이 창고에 쌓았던 적이 있었지. 그때 정말 힘들었었어.”라며 당시의 고생스러웠던 양곡창고 관리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셨다. 아울러 당시 첫 월급은 쌀3가마에 해당하는 값어치였다고 귀뜸 해주셨다.

 과림분점 개소 당시 근무를 하고 북시흥농협에서 1999년에 명예퇴직을 하신 송영국(69)씨는 초창기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셨다.

 

▲ 과림지점 창고 모습     © 심우일

 

 1971522일의 개소식 상황은 지금 생각하는 수준은 아니었구요. 아주 작은 규모로 행사를 진행했어요. 당시 조합장이었던 구경회씨가 오셨구,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도 지냈던 것으로 기억되네요.

 사무실에서의 주요 업무는 예금과 대출의 신용사업, 농자재 제공의 경제사업을 주로 했죠. 직원은 분소장님은 송희리씨 1, 남직원인 나, 여직원은 송태자씨 1명으로 총 3명이 근무했어요.

 초창기 출납업무는 모두 수기였고 주판을 이용하여 계산했어요. 퇴근 시간은 현재보다 많이 늦었죠. 지금은 전산화 되어 일일 결산이 빠르지만 당시는 수기와 주판을 이용하여 계산하다 보니 업무 처리 속도가 늦었거든요. 점심 식사는 집이 근처라서 집에 가서 먹고 왔어요. 동시에 갈 수 없으니까 3명이 교대로 식사를 하고 왔죠. 또한 금고에 직접을 현금을 보관하고 있어 항상 긴장되었어요.

 특히, 혼자서 날마다 숙직을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일 걱정되고 긴장되었죠. 당시에 제일 힘든 점은 매일 숙직을 하는 거죠. 숙직을 할 사람이 없으니까. 당시 과림동 일대는 농촌지역으로 소규모 영세농이 대다수를 점하는 낙후지역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이런 지역에 소래농협 과림 분소가 개소되어서 주민들 반응이 매우 좋았죠. 그 이유는 편리하니까. 주머니에 돈이 생겼을 때 예금을 할 수 있고, 또한 영농자금을 비롯한 각종 생활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었거든요. 뿐만 아니라 도시에 가지 않고도 집 근처에서 각종 농자재 및 생활필수품을 구입하여 살 수 있었기 때문이죠.

 

▲ 1970년초 과림지점 사무실 내부 모습(송영국 제공)     © 심우일

  

3. 과림분소(과림지점) 발전

 과림분소는 농촌지역에 위치하여 신용사업보다는 경제사업 중심으로 운용되었다. 비료와 농약 등의 농자재,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공급하는 구판장도 설치했다. 농민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사업이 중심이었다.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예금보다는 영농자금 등 생활을 위한 자금을 대출받으려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런 이유로 해서 연말이 가까워지면 대출금 회수를 독촉해야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였다. 또한 컴퓨터 전산화가 아닌 수기 및 타자로 업무를 처리하다보니 연말 결산을 할 때에는 밤을 세워 일을 해야 했다.

 직원들도 봉사정신이 있어야 근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처럼 쾌적한 사무실 환경도 아니었다. 허름한 창고 같은 비가 오면 물이 새는 열약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직원간의 관계는 가족처럼 단란하였다.

 1991년에 농협에 입사하여 과림지점에서 1년간 근무하다가 다시 과림지점으로 발령받아 부지점장으로 현재 근무중이신 윤충열(49)씨는 당시 근무하는데 직원으로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교통문제였죠. 지금은 자가용으로 출퇴근하지만 당시는 교통수단이 오토바이였거든요. 연말에는 결산 때문에 늦게 업무가 끝나기에 퇴근하는데 힘든 점이 많았죠라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주셨다.

 19941125일에 기존의 노후화된 건물을 없애고 새롭게 사무실을 확장하여 70평 규모로 신축을 하였다. 19959월에 단위농협 온라인시스템이 구축되고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본격적으로 금융 중심의 신용사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아울러 과림동 일대의 지역 환경도 시대가 흐르면서 변화하여 급격히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경지면적 및 농민의 수가 점차 감소하고 소규모 상가와 공장이 들어오면서 자영업자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에 따라 과림지점에도 변화가 생겼다. 기존의 농약, 비료 등 농자재 및 생활필수품 구매와 판매 등의 경제사업은 최소화하거나 농기계 사업은 매화지점처럼 다른 지점으로 이양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과림지점에 있던 하나로마트는 사업을 폐지하기도 하였다. 뿐만아니라 농협 조합원만이 아닌 비조합원들도 과림지점을 이용하는 고객이 많아졌고, 과림지점 주변의 자영업자들이 주요 고객으로 등장하였다. 결과적으로 예금과 대출금의 규모가 커지고 금융업무가 주요 업무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양곡창고에도 일어났다. 정부가 매년 농가로부터 정해진 가격에 벼를 사들여 양곡창고에 보관하던 추곡수매제도는 수확기 가격안정과 수급조절, 농가소득지지 등의 목적으로 1948년 정부수립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1950년대에는 현물수매방식으로, 1962년에는 현금수매로 하였다. 과림지점 양곡창고도 이 일대 농민들의 추곡수매장소였다. 수매는 40kg짜리 가마니나 포대에 담아 1년 농사를 평가 받고 목돈을 만질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정부는 기존 추곡수매제도가 국내외 시장상황에 맞지 않고 DDA(도하개발아젠다) 쌀개방 협상에 따라 농가보조금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아래, 2005년부터 추곡수매제도를 폐지하고 정부가 일정 분량의 쌀을 시가로 매입해 시가로 방출하는 공공비축제도를 도입했다. 정부양곡창고였던 과림지점 양곡창고는 양곡비축의 필요성이 없어지면서 일반창고로 전환하여 농약, 비료, 사료 창고로 대체하여 사용되고 있다.

 윤충열씨는 이전에는 지점이 본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으로 본점 중심의 업무를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전산화로 인해 업무가 대폭 지점으로 이양되었죠. 과림지점도 마찬가지구요. 또한 20년만에 다시 과림지점에 근무하게 되면서 고향 분들을 위해 일하게 되어 기쁩니다.”라며 과림지점의 변화된 위상과 고향에서 다시 근무하는 소회를 밝혔다.

 

▲ 2005년 매화창고에서 추곡수매 모습(북시흥농협 제공)     © 심우일

 

4. 현재의 과림지점 개요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96-3에 소재한 북시흥농협 과림지점. 영업점 형태는 도시형으로 대지 170평에 건물 70평의 사무실을 갖추고 있다. 자동화코너에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3, 현금자동인출기(CD)1, 공과금수납기가 1대이다. 주차장은 25평 규모 주차 가능대수는 10대다.

 부대시설로는 창고로서 대지 199평에 건물 100평이다. 또한 3평짜리 구내식당도 있다. 내부조직현황을 볼 것 같으면 이사1, 대의원 10, 영농회 4개 조직에 291, 부녀회 4개로 구성되어 있다. 직원현황은 M1, 31, 5~6급이 6명으로 총8명이 근무를 한다. 20121231일 기준 주요 실적은 수신사업의 잔액이 4989400만원이며, 여신 잔액은 4794100만원이다.

 

▲ 2013년 현재 과림지점 모습     © 심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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