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산부추꽃을 만나다

김민지(김순기) | 기사입력 2018/12/04 [21:30]

설악산, 산부추꽃을 만나다

김민지(김순기) | 입력 : 2018/12/04 [21:30]

       -설악산, 산부추꽃을 만나다 -

▲     © 김민지(김순기)

이른 아침부터 설악산에 달려온 이유를 묻는 다면, 난 낙타바위에서 오매불망 기다리는 산부추꽃이라고 답할 것이다.

숲은 겨울 채비로 바쁘게 시간에 끌려가고 있었다. 끌려가는 시간을 잡으려고 몰려든 사람이 넘쳐났다. 화암사에서 신선대로 가는 길목엔 단풍놀이하기에는 미흡했다. 대신 인산인해인 사람들 등산복이 각양각색이어서 마치 절정인 단풍을 연상케 했다. 우리는 화암사를 지나면서 수바위 위용에 놀라 보고 또 쳐다보았다.

 

수바위에서 신선대 그리고 선인대까지 떠밀려서 올라갔다. 신선대로 가는 도중 나홀로 핀 산부초꽃을 만났다. 그런데 난 산부추꽃을 보고 사람들한테 솔채꽃이라고 알려 주었다. 내가 살던 고향집 뒷밭과 다른 곳에서 본 부추꽃은 흰색이었기 때문이다.

▲     © 김민지(김순기)

얼마쯤 걸었을까 나무들이 자신의 색깔로 찾아가는 시간, 내 앞에 떡하니 모습을 드러낸 투구꽃 빛깔이 곱다. 투구를 닮아서 투구꽃이라고 한다, 영어 이름은 멍크후드수도승의 두건을 뜻한다고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수도승이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염불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식물 중 독성이 가장 강하다고 하니 겉모습 보고 판단할 일이 아니다는 걸.

 

선인대로 오르는 길이 편하지 않은데, 사람이 많아서 쉬엄쉬엄 오를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산행이 버겁지 않고 조금은 느긋해서 여유가 생겼다. 그 여유 틈이 멀리 가까이 자연과 교감하게 해 주었다.

▲     © 김민지(김순기)

설악산 숲은 야생화는 거의 떠났고, 나무들이 다투듯 햇살에 변화를 시도할 때, 선인대를 지나 낙타바위에서 수줍게 꽃잎을 흔드는 산부추꽃을 만났다. 먼길 달려온 이유가 산부추꽃과 인연을 맺으려고. 꽃말이 보호라고 한다. 부추는 일상에서도 특히 추어탕 같은 탕 종류에는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부재료로 많이 쓰인다.

 

구름 바람 별이 쉬었다 가는 곳에 숙명처럼 낙타바위와 하나가 된 산부추꽃이 있다. 사람들 시선은 온통 건너편 울산바위에 가 있고, 낙타바위를 벗삼아 인증샷 남기느라 여념이 없다. 무릎 아래에서 꽃잎을 살랑거리며 애교 썩인 산부초꽃의 흔들림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커다랗고 크고 웅장한 것에만 마음 빼긴 사람들, 그들의 무관심에도 아량곳 없이 한해살이로 살다 떠나는 산부추꽃의 색깔이 선명하다.

 

자주 분홍 보랏빛으로 불꽃놀이를 즐기는 듯 활짝 웃고 있다. 그 곁에 주저앉아서 꽃잎을 건드렸다. 깔깔 웃으며 흔들리는 모습에 저절로 웃게 한다. 산부추꽃 존재를 나만 보고 돌아서기에는 안타까워서 주위 사람들한테 알렸다. 너의 존재가 그 어떤 것보다 감동과 순수함이 있어서다. 그리고 꽃이 강건하고 아름답다.

 

사실 낙타 바위에서 최고의 풍경은 맞은편에 우뚝 솟은 울산바위이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울산바위 존재감은 누구나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무게감과 위엄이 있다.그래도 이 시간만큼은 산부초꽃이 마음에 와 닿는 잔잔한 울림이 배어있다.

▲     © 김민지(김순기)

숲 길을 지나는데 가을볕에 벌겋게 달아오른 단풍나무가 속수무책으로 서있다.  그 유혹에 도종환 시인의 ‘단풍 드는 날’ 일부를 바람에 실려 보냈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정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우리는 화암사에 뜰을 거닐었다. 화암사에서 압도적 풍경은 수바위다. 계절에 익은 나뭇잎이 바람을 만나 독립선언을 한다.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이 바닥으로 가볍게 내려앉는다. 속세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경지를 무심이라고 했던가. 바람에 공중 부양하는 낙엽이 그러하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갈 거면 혼자 가고, 멀리 갈 거면 함께 가라, 했다. 오늘 함께한 설악산에서 산부추꽃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리고 시인의 말처럼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드는 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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