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렌마트 희곡선과 필경사 바틀비

김민지(김순기) | 기사입력 2018/11/28 [21:40]

뒤렌마트 희곡선과 필경사 바틀비

김민지(김순기) | 입력 : 2018/11/28 [21:40]

  -뒤렌마트 희곡선과 필경사 바틀비-

 

여성민 시인의 추천 책이다. 제목만 들었을 때는 좀 어렵고 쉽게 읽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요즘은 장편소설과 난해하고 생각게 하는 책은 겁부터 난다. 경년기를 겪으면서 어느 책을 읽어도 다음날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나이로 치부하지만, 책 좋아하던 나에게 닥친 현실은 외면할 수 없어서 좀 쉽고 단편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 두 책을 받아 들고선 고개를 갸우뚱했다. 제목만 보고선 그냥 머리부터 아팠다. 먼저‘ 필경사 바틀비’를 읽고 ‘뒤렌마트 희곡선을 읽었다. 역시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그래서 책 읽기를 다른 방법으로 했다. 먼저 두 작품 해설과 작가에 대해 꼼꼼히 읽고, 인터넷으로 다른 사람들이 읽은 평을 읽기도 했다. 그리고 나니 작품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고,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읽으니 좀 더 속력이 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경사 바틀비’는 여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과 물리학자들’ 좋아하는 추리소설처럼 재미있게 읽었다.

 

▲     © 김민지(김순기)

 

우리나라 속담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사람이 가장 숨기고 싶어 하는 정곡을 타깃으로 심리전을 방불케 한다. 사람 목숨 값이 10, 5억은 시에 기부하고 5억은 각 가정에 분배하는 조건은 정의를 사겠다는 것이다. 그 정의가 모든 이를 위한 것이 아닌 개인의 정의를.

굶어서 죽느냐 아니면 함께 살아온 이웃을 배반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의식주는 사람의 기본 권리이다. 그 기본 권리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변하게 되어 있다. 그것도 무섭게 잔인하게.

 

일과 클레어 자하나시안의 철부지 때 사랑과 배신이 45년이라는 시간 속에 묻혔던 팩트가 되살아나 사람들을 교란시킨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자본주의 앞에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일은 아니지만, 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들의 안의를 챙긴다.

젊은 시절 한때의 불장난 같았던 사랑은 여자에게 한을 남기고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마치 남자를 믿지 못해서 계속 결혼하고 이혼하고를 반복하는 여자의 삶은 돈이라는 부가 권력을 손에 쥐어 준다. 그 돈의 권력은 한 나라를 좌지우지할 정도다. 결국 여자의 한은 한 남자를 관 속에 넣어 못질을 한다. 그 여자의 정의를 위해 집단 살인에 가담한 도시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간다.

 

돈이면 다 해결되는 세상, 그 세상에서 아내도 아들도 딸도 가족이라는 틀에 형식적으로 모인 굴레다.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사건이지만, 그것을 걱정하고 위로하는 사람은 없다. 당장 살아가는 게 중요하지. 마녀사냥하는 느낌이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고 떨뜨림 했다. 못 먹을 것을 먹은 듯.

 

지금 우리 사회도 약한 자의 대한 폭력을 법으로 강하게 규제하고 있고, 앞으로는 더 강력해질 것이다. 특히 성폭력은 우리 문화를 바뀌게 할 정도로 커다란 변화를 주고 있다.

여성민 시인은 어느 노부인의 방문을 도덕은 해체하기 시작하고 도시 전체는 논리를 만들어간다. 사람들이 합리화로 정당화하고 있을 때, 주인공 일만이 자신의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것을 수긍하고 수용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반성한다. 여기서 뒤렌마트의 질문은? ‘사람들은 뜻밖의 변수에도 얼마나 쉽게 자신을 해체해 버리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     © 김민지(김순기)

 

선호의 뜻은 여럿 중에서 어떤 것을 특별히 좋아함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책의 주인공 바틀비는 좋아함이 아니라 모든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삶의 밑바닥까지 간 남자 그 밑바닥에서 그가 선택할 있는 단어는 선호합니다.’가 아닌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도 선호하지 않는다는 바틀비만의 독특하고 특별한 언어다. 그리고 가장 정중하게 거절하거나 혹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말이다.

 

바틀비는 무엇을 지켜도 똑같은 대답으로 하지 않는 쪽을 선호하겠습니다.’ 그가 절대로 사무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마치 자폐증처럼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남자. 무엇이 이 남자를 자기 세계에 가두어 놓았는가? 그 누구와도 상호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유대감도 없다. 그저 자신의 소신인 선호하지 않는다는 말로 자신을 표현할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틀비를 고용한 변호사는 측은지심을 가진 사람이다. 시대적 상황을 떠나서 바틀비만 본다면 노숙자이면서 낙오된 인생이다.

 

고용주는 바틀비를 섣불리 해고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려 한다. 그러나 결코 변화를 시도 하지 않을 바틀비, 어쩜 그는 이미 죽음의 문 앞에서 서성거리다 어느 날 문을 걸어 잠근 것은 이닐런지. 그것도 세상과 타협하거나 더불어 사는 것 또한 선호하지 않습니다하면서 고립과 고독을 감수하면서 까지 바틀비가 지켜내야 할 자존감은 무엇일까?그것은 나는 선호합니다. 그러나 그 말을 할 용기가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들이 내 말을 반대로 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게 아닐까?

 

우리 사회는 바틀비를 원하지 않는다. 순응하고 사회가 원하는 대로 따라 주기를 바란다. 제대로 된 어른이 없는 게 이 시대의 비극이다. 갑질에 이기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선호하지 않습니다.’ 아님 선호합니다.’ 둘 중 하나를 순간마다 선택하며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운명이 아닌가. 책 속에서 고용주인 변호사가 바틀비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그 필경사가 선천적인 그리고 치유할 수 없는 장애의 희생자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그의 육신에 물질적인 원조를 줄 수 있겠지만, 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육신이 아니었다. 고통 받고 있는 것은 그의 영혼이었으며 나는 그의 영혼에 닿을 수 없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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