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따라 돌고 도는 다락밭이야기-망종

2016년6월5일 잊을 것은 잊어도 되는 계절, 망종

느림 | 기사입력 2018/06/20 [15:42]

절기 따라 돌고 도는 다락밭이야기-망종

2016년6월5일 잊을 것은 잊어도 되는 계절, 망종

느림 | 입력 : 2018/06/20 [15:42]

 

절기 따라 돌고 도는 다락밭이야기-망종

201865일 잊을 것은 잊어도 되는 계절, 망종

 

망종芒種. 양력 6월 상반기에 들었으며, 이십사절기로는 아홉 번째 절기다.

 

24절기에 대해서 잘 모를 때, 가장 어려운 의미를 가진 것이 망종이었다. 까끄라기 망, 씨 종. 특히 자는 모르는 글자였다. 까끄라기는 보리, , 벼 등의 곡식이 익었을 때 알곡에 달린 까끌까끌한 털을 말한다. 그러므로 까끄라기 씨앗이라는 망종의 의미는 바로 곡식을 의미한다. 보리와 밀을 베고, 벼 모를 심는 철이다요즘은 보리를 심어 이모작을 하는 곳도 흔치 않고, 날씨가 따뜻해져서 논에 나가면 모가 벌써 한 뼘도 더 자란 것 같다.

 

보리를 베어 비로소 첫 곡식이 나오니 보릿고개가 끝나는 철이기도 하다. 보리라도 거둬야 제상을 차린다하여 현충일은 망종과 붙어있다. 그저 국경일이자, 공휴일이던 날이었는데 유래를 들으니 비로소 서글프다. 가난한 시절 전장에서 쓰러져간 아픈 영혼을 달래는 날. 망자를 위해 밀, 보리를 베는 허리가 어찌 애절하지 않았을까.

 

망종에 해야할 밭일과 살림

메주콩, 밤콩, 선비콩, 서리태 심기

고구마 모종 말라죽은 데 보식하기

정신없이 풀 매기

목초액 등, 벌레 기피제 부지런히 뿌리기

감자 잎에 나타난 28점무당벌레·애벌레·알 잡기

양파, 완두콩 거두기

갓씨, 대파씨, 시금치씨 받아 갈무리하기

열매 채소 수확 시작

, 보리 베기

매실효소, 매실주 담그기 

 

콩 심기

농부 흉내 내는 손바닥만 한 텃밭에서도 콩 심기 바쁜 철이다.

며칠 전에 콩을 불려 몇 두둑을 심었는데 싹이 단 하나도 안 났다. 단연 모든 의심을 받은 것은 새.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세상살이 지긋지긋한데, 이젠 새 눈치까지 봐야하나? 당당하게 심으리라! 안 나면 말지! 내가 이 마당에 동네 새들 눈치까지 보며 살아야하나!

그러나한 개의 싹도 나지 않은 콩밭을 보니 콩 심는 손이 긴장이 되고, 결국 가자미눈을 하고 동네 전깃줄마다, 나뭇가지마다 앉은 새가 콩 심는 날 지켜보고 있지는 않나 힐끗거리고야 말았다. 그 꼴이란……. 정말이지 다락밭 생태계의 가장 약자는 ''란 말인가. 성경말씀에 새는 내일 뭘 먹을까 걱정을 안 한다더니 그 비결이 뭔지 이제 알았다.

 

새만 머리를 쓴단 말인가, 나도 머리를 써서 이번엔 마늘밭 사이에 메주콩을 심어봤다. 다 자란 마늘이 콩 심은 자리를 가려서 새가 콩을 쪼지 못하리라. 마늘은 곧 캘 때가 됐으니 마늘 캔 자리에서는 콩이 계속 자라는 사이짓기를 하는 겪이다. 몇 해 전 녹두를 그렇게 키웠는데, 수확이 좋았다. 과연 올해는 어떨지? 며칠 후, 마늘 사이를 유유히 산책하며 콩을 쪼아 먹는 비둘기를 보니 참 기가 막힌다. 콩 쪼아 먹는데, 시원한 마늘 그늘까지 만들어준 꼴이다. 결국 메주콩 새싹은 심은 것의 10%도 보지 못했다.

 

▲     © 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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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 끈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부터 콩을 보호하는 방법을 찾기는 찾았다. 콩을 심고, 낙엽이나 풀, 나뭇가지를 덮어주는 것이다. 거의 90%의 콩 싹을 볼 수 있다. 요건 몰랐지롱? 엄마도 어디서 배워왔는지 폐종이컵을 잔뜩 가져와서는 종이컵 바닥을 십자로 칼집을 주어 콩 심은 자리를 덮어주는 방법을 택했다. (이 방법도 좋기는 한데 나중에 컵을 제거 할 때 새싹이 구멍 위로 잎을 내밀어 다칠 수 있다. 발아율은 보장되지만 여러모로 성가신 방법이니 낙엽으로 덮는 것이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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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받기

망종은 봄 속에 들은 가을이다. 꼭 일 년에 가을이 두 번 있는 것처럼, 봄에 정신없이 피던 꽃들이 지고, 씨앗을 맺기 바쁘다. 가만 살펴보면 망종시기에 씨를 맺는 것은 월동한 작물들이다. 쪽파씨, 대파씨, 시금치씨, 갓씨, , 보리 등 씨앗 갈무리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여기에 토종 배추와 토종 무까지 꽃을 피웠다면 어마어마 힘들었겠지만, 몇해전부터 너무 힘들어서 토종 무,배추는 채종을 하지 않는다. 십자화과인 이들은 교잡되기가 쉬워서 꽃이 필 때, 주변의 십자화과를 다 뽑아주고, 망을 씌우는 등 별짓을 다해야 씨를 얻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성을 다했는데도 가을 심어보니, 교잡되어 배추가 청경채처럼 생겼다거나 무처럼 생긴 것이 나오면 영 농사지을 맛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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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종의 밥상, 먹을거리

매실 효소, 매실 주 담그기

매실은 망종에 따라했던가. 농약을 안쳐서 그런지 망종이 지나면 열매가 모두 떨어져서 못쓰게 된다. 망종이 오면 얼른 따 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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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림: 매실항아리 소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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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동안 담근 매실효소가 항아리와 단지마다 그득해서 올해는 효소는 담그지 않고 매실주만 담갔다. 서로의 술을 탐내지 않도록 구슬씨와 각 1병씩 담갔는데, 구슬씨는 설탕에 버무려 하루 있다가 술을 부었고, 귀찮은 나는 매실 물기만 말리고 바로 술을 부었다. 나중에 맛을 비교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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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주를 잘 담그고 기념으로 2년 된 매실주를 한잔씩 했다. 크하~~ 좋다. 올 봄에 다락밭 농부들과 술을 마시다 술이 떨어져서 매실주 단지 뚜껑을 열었다. 이들은 술에 취해서 매실주를 느림 몰래 다 먹고 보리차를 부어놔야겠다고, 본인들의 작전을 다 들리게 얘기했다. 내가 매일 밤 보리차인지 매실주인지 확인하면서 한 잔씩 하고 있는 사실을 이들은 모를걸?

 

완두콩

완두콩이 통통 여물었다. 완두콩은 텃밭에서 나오는 첫 저장 식량이다. 겉껍질이 거실거실 해지면 딸 때가 된 거다. 완두콩 밭을 지나다가 덜 여문 콩깍지를 따서 까먹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런 단 맛이 세상에 있구나! 어린이 텃밭교육에서 아이들한테 완두콩을 하나씩 따서 줬더니 묵묵히 완두콩 한 알을 씹던 여섯 살짜리 입에서 영감처럼 꿀맛이네!’해서 한참 웃었다. 살아가면서 이 맛을 오래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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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확한 완두콩은 일단 쪄먹는다. 새파랗게 살짝 쪄야 맛있다. 노란완두나 보리완두는 껍질째 먹을 수 있다. 그 다음에 수확하면 일단, 실하고 고르게 든 것을 골라 씨앗을 남긴다. 농사짓는 첫해에 햇 완두콩 맛에 반해 씨앗도 잊고 홀랑 먹어버렸다. 돼먹지 못한 농부 같으니라고.

 

▲     © 느림

 

콩을 까서 바로 냉동 보관하면 해콩 맛이 오래간다. 완두콩밥은 물론이고, 살짝 데쳐서 샐러드도 해먹고, 카레나 짜장을 볶을 때, 떡볶이에 듬뿍 넣으면 농부라서 행복하다는 말이 입에서 새어나온다.

완두콩은 까는 시기를 놓쳐 꽁깍지가 마르면 콩이 쪼글쪼글해진다. 그러면 콩이 썩었다고 버리는 사람을 여럿 봤다. 콩을 불리면 다시 탱글탱글 해진다. 상한 것이 아니라 마른 것이니 제발 버리지 마시길. 완두콩은 옥수수처럼 살짝 덜 영글었을 때 까면 당도가 높아 제일 맛있기는 하다.

 

▲     © 느림


작년에는 받아둔 씨앗 일부를 찾지 못해 조금만 심었다. 엄마는 내가 씨를 보관했다고 그러는데, 나는 분명 엄마가 씨를 갈무리해서 보관한 것으로 기억한다. 서로 우겨봤지만 씨앗은 온데간데없고, 결국 조금밖에 심지 못한 완두콩은 발아율조차 좋지 못해 수확량이 엄청 작았다.거둔 것을 모두 고스란히 씨앗을 삼았다. 완두콩을 못 먹은 것이 어찌나 서운하던지 올해는 한 맺힌 듯 곳곳에 완두콩을 심었다. 나중에 결국 묵은 완두콩씨앗은 엄마의 냉장고에서 발견됐고, 앞밭 어르신이 심고 남은 완두콩씨앗을 또 주셨으니 넘쳐나는 씨부자가 됐다. 완두콩 밭만 두 두둑을 만들고, 대파 사이에 또 심고, 부추 밭가에 또 심고, 그래도 성에 안차 밀 사이에 또 심고. 올해는 완두콩이 어찌나 많이 나왔나 다락밭에 들르는 손님마다 완두콩 한 봉다리씩을 선물했다. 거두는 것도 신나고, 퍼주는 것도 신난다. 밭이 작아 평소 맘 놓고 나눌 것도 마땅치 않은 가난한 곳인데, 곡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뭔 말인지 실감한다. 그 많은 콩을 구슬씨가 저녁마다 까느라 수고했다. “구슬씨, 콩 다 까고 놀러가세요!”

이렇게 깐 콩은 비닐 팩에 넣어 차곡차곡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쌀알보다 완두콩을 더 많이 넣어 밥을 지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제 꿈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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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종

망종의 먹을거리에 어찌 마늘종을 빼놓을까. 쏙쏙 올라오는 마늘종은 일단 뽑는 재미다. 마늘 꽃망울을 달고 올라와 한 바퀴 구부러진 꽃대를 천천히 달래가며 잡아당기면 하는 소리와 함께 마늘종이 뽑힌다. 엄마는 이른 아침 이슬이 마르기 전에 뽑아야 잘 뽑힌다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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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점심상에 올려 고추장을 찍어 먹는다. 작년에 저장해둔 마늘은 이미 씨가 말랐고, 빻아서 냉동실에 보관한 양념마늘까지 똑 떨어진 요맘때 알싸한 마늘종의 맛이 얼마나 반가운지.

다음은 볶아 먹는다. 엄마가 해준, 새우 넣고 볶은 마늘종 볶음은 정말 맛있다. 역시 밑반찬의 여왕이다.

그래도 남는 마늘종이 있다면 장아찌를 담근다. 매우 좋아하는 반찬인데, 너무 아낀 나머지 2년 전 장아찌를 아직까지 먹고 있다. 나 같은 게으른 사람에게 저장 발효 음식의 유통기한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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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에도 꽃이 핀다. 미처 따 먹지 못한 마늘종은 꽃으로 피어난다. 꽃이라기엔 요상한 생김인데, 아주 작은 마늘 알이 다닥다닥 달린다. 마늘 주아라고 하는데, 요것을 버리지 않고 받아두었다가 2년을 키워 씨마늘로 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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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경채와 쑥갓은 꽃대가 올라왔지만, 상추는 아직 한창이다. 세 번째 심은 열무를 뽑아 김치를 해먹었고, 미나리와 참취는 쇠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부추는 벌레가 심해서 먹지 않고 다 잘라 버렸다. 새잎이 올라오면 관리를 잘 해서, 막 열리기 시작하는 오이와 무쳐먹어야겠다. 풋고추도 열리기 시작하고, 마디호박도 여물고, 깻잎도 손바닥만큼 커지고 있다. 나는 그저 먹을 시간만 확보하면 되는 것을 그거를 못하고, 풀매다 지쳐 맥주나 한잔 하고 저녁을 때운다.

호박을 보니, 내일 감자를 좀 후벼서 저 호박을 넣고 고추장찌개를 잘박하게 끓여먹어야겠다 싶다.

 

망초

안에서 농사일지를 쓰는데 밖에서 누가 기웃거리는 것 같아 내다보면 아무도 없다. 조금 있다가 또 누군가 기웃거리는 것 같아 내다보니, 바람에 살랑거리는 키 큰 망초가 활짝 열린 문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기웃거린다. 뜨거운 볕이 좋아 망종에 피는지, 꽃핀 얼굴이 환하다.

망종엔 망초가 흐드러지게 핀다. 이 흔한 꽃이 예전엔 예쁘다고 생각 못했다. 너무 흔해서 꽃이라는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풀을 매다 고개 들어 만난 흐드러지게 핀 망초를 뽑을까 말까 고민한다. 한 숨 쉬며 꽃구경하고, 싹 뽑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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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초가 많이 피면 나라가 망한다 하여 (망할 망)초라 한다. 나는 망종이면 잊지 않고 떠오르는 일들에 꼭 (잊을 망)초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잊을만한 것들은 잊으라는 듯 밭고랑 곳곳에서 망초가 초여름 바람에 산들거린다. 아무리 뽑아내도 어느새 다른 자리에 피고 있다.

 

 

,사진: 느림 nreem@naver.com 생활문화탐구소 틈 http://cafe.naver.com/tmtm20

 

 

 

이 글은 매화동에 있는 생활문화탐구소 틈+다락밭에서 그간 함께 농사지으면서 기록해온 농사일지를 24절기 흐름에 따라 재구성한 것입니다. 다락밭은 화학비료, 농약, 비닐을 사용하지 않고 토종씨앗으로 유기순환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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