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동주염전을 가면 송홧가루 소금을 만난다

동주염전에서 홍춘원(1943년생)염부를 만나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18/05/09 [01:15]

지금, 동주염전을 가면 송홧가루 소금을 만난다

동주염전에서 홍춘원(1943년생)염부를 만나다

최영숙 | 입력 : 2018/05/09 [01:15]

 

▲ 송홧가루 소금을 생산하다     ©최영숙

 

집을 나서는데 차에 송홧가루가 노랗게 내려 앉아 있었다. 동주염전의 송홧가루 소금이 궁금해졌다.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에 있는 동주염전으로 향했다. 동주염전의 염판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 탄성이 나왔다.

 

▲ 2015년까지 47년간 소금을 생산했던 홍노진(79), 심인자(77)부부     © 최영숙


2004년 동주염전과 인연을 맺고 그곳에 가면 늘 찾아가는 소금창고가 있었다. 홍노진(79), 심인자(77) 부부 염부의 염판이었다. 그러나 2015년 47년간 소금을 생산하던 염부 일을 접었다. "바람소리만 듣고도 소금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던 최고의 염부였었다. 무뚝뚝 하시면서도 따뜻했던 홍노진 어르신과 활달하고 유쾌하게 일을 하시던 심인자(77) 두 분의 염부를 만날 수 없는 것이 못내 서운했다.

 

▲ 동주염전에서 홍춘원(1943년생)염부가 송화가루 소금을 거두다     ©최영숙

 

홍노진 어르신이 하던 염판에서 오늘은 홍춘원(1943년생)염부가 황금빛 송홧가루 소금을 거두고 있었다. 10년 넘게 동주염전을 다니던 나를 기억한다고 하셨다. 

 

76세의 연세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연륜이 느껴졌다. "17살 때부터 염부생활을 했고 요즘 송홧가루 소금을 사러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했다.

 

▲ 2005년 8월 5일 김대자(59)씨를 만나다     © 최영숙


홍노진 어르신 옆이어서 10년 넘게 만나오던  무협지의 여걸처럼 날렵하게 소금을 모으던 김대자(59)씨와 우종섭(61)씨도 이제 더 이상 염전일을 하지 않아 만날 수 없었다. 어느 해 겨울 동주염전에서 사진을 담고 있을 때 "아줌마 거기서 나와요." 하면서 멀리서 우종섭(61) 씨가  뛰어 왔었다. 그러다 나를 보고는 "아, 아줌마네! 잘 지냈어요." 하면서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때, 아 나도 이제 동주염전의 먼 붙이처럼은 여겨주는 듯해서 따뜻했었다. 

 

중국산 소금이 수입되고 고된 노동력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소금값으로 인해 많은 분들이 떠나서 듬성듬성 빈 염판들이 많았다.

 

▲ 2018년 5월 8일 동주염전     © 최영숙


그러함에도 오늘도 동주염전은 소금을 거두는 사람들의 손길로 인해 조금은 활기가 찼다. 

 

▲ 2018년 5월 8일 동주염전에 송홧가루가 염판에 내려앉은 모습     © 최영숙

 

소나무 꽃가루가 날리는 5월 1주일만 생산하는 송홧가루 소금을 먹었던 지인은 "음식을 하면 노란 송홧가루가 얇은 막으로 보이고 맛이 특별하다."고 했다. 나 또한 송홧가루 소금이 오는 즈음이면 지인들과 함께 동주염전에 가서 소금을 사왔다. 동주염전의 소금으로 김치를 하거나 국, 찌개를 끓이면 달았다. 짠 소금에서 단맛이 나는 것, 동주염전 소금을 만나고 알았다.

 

▲ 2018년 소금꽃이 피다     ©최영숙

 

송홧가루 소금 결정체는 옅은 노란 빛을 띄고 있었다.

 

▲ 노란 물감을 풀은 듯한 송홧가루 소금     © 최영숙


소금을 모으기 위해 고무래판이 지나간 자리는 물감을 풀은 듯했다. 색감이 참 아름다웠다.

 

▲ 동주염전과 하늘, 염부, 송홧가루 소금     © 최영숙


홍춘원(1943년생) 염부는 소금을 사려고 한다니까 오늘은 소금 포대를 담을 비닐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했다. 아쉽지만 되돌아 나왔다.

 

▲     © 최영숙


가까운 날 동주염전으로 가서 송홧가루 소금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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