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분 없는 독립운동가의 묘비를 보면서

시흥의 독립운동가 권희 선생

심우일 | 기사입력 2017/07/29 [21:32]

봉분 없는 독립운동가의 묘비를 보면서

시흥의 독립운동가 권희 선생

심우일 | 입력 : 2017/07/29 [21:32]

 

당신은 희망입니다라는 책을 한 지인(知人)으로부터 얼마 전에 받았다. 책은 시흥지역에서 보람찬 인생을 살아가시는 어르신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인지 아름답고 활기찬 노년을 찾아서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매우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시흥의 애국청년 권희(權憘), 이제야 다시 찾다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내가 지금 사는 곳은 시흥시 장현동인데, 애국독립운동가인 권희 선생의 고향이자 독립운동을 펼쳤던 곳이 장현동이기 때문에 더욱더 관심이 쏠렸다. 단숨에 책을 읽은 뒤에 선생의 숭고한 독립운동 발자취를 찾아서 답사를 해보기로 마음먹고 결행을 했다.

 

▲ (사)한국효도회시흥지역회에서 발간한 서적 겉표지     © 심우일

 

무더위와 장맛비가 가위 바위 보를 하는 틈새로 과거 시흥군 군자면 장현리 두일 마을을 찾아 갔다. 지금은 그곳이 시흥시 장현동으로 장현택지개발지구에 포함되어서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황이다. 네비게이션을 이용하여 선생의 생가였던 장현리 417번지에 도착했지만 붉은 황토 흙만이 눈에 강렬하게 들어올 뿐이다. 집터는 이미 구획정리 작업으로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이렇게 두일 마을과 생가터 주변은 개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고, 선생이 독립만세를 위해 사발통문을 작성하던 중 일본순사에게 발각되어 체포되었던 장밭머리 원두막에서의 일은 옥녀봉(玉女峰)만이 그때의 희망과 절망으로 기억하고 있는 듯 했다.

 

▲ 두일 마을의 권희 선생 생가터 주변에서 바라본 옥녀봉(사진 중앙)     © 심우일

 

다시 남쪽을 향해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나무와 칡넝쿨이 엉겨져 있는 사이를 겨우 헤치고 들어가서야 선생의 묘역을 찾을 수 있었다. ‘대한독립의사(大韓獨立義士) 안동권공휘희부군지묘(安東權公諱憘府君之墓)’라는 묘비가 외롭게 서 있다. 봉분은 없다. 어찌된 일인가? 선생의 조카인 권용학(71)씨는 개인적으로 묘를 관리하는 것보다 국가에서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국립현충원의 충혼당으로 모셨죠라며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으로 2016년에 이장을 한 배경을 알려주셨다. 봉분 없는 묘비만이 선생의 애국 독립 의지를 간직한 채 하늘과 땅을 향해 절규하고 있었지만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었다.

 

▲ 사진 오른쪽 묘비가 권희 선생의 묘였던 곳.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모셔서 현재 봉분 없이 묘비만 원래대로 서 있는 모습     © 심우일

 

 권희 선생의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독립운동사자료집5권의 삼일운동 재판기록을 보면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재판은 보안법 위반으로 권희 선생은 징역 1, 장수산 선생은 징역 10월에 받았으며, 당시의 판결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피고들은, 대정 8(1919) 31일 손병희(孫秉熙) 등이 제국(일본) 통치의 굴레를 벗고 조선국을 수립하려는 뜻을 외친 이래로 각지에서 조선독립운동이 왕성하다는 것을 전해 듣자 이에 찬동하여 피고들의 동리에서도 역시 많은 이민을 선동 그 운동의 기운을 빚어내려고 하여 동년 46일 전기 피고 권희 집에서 그 피고의 발의 집필로 비밀통고(秘密通告)라는 제목 아래 각 동리에서 차례로 회람하도록 그림으로 표시하고, 또한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 이래로 받은 10년간의 학정에서 벗어나 독립하려 한다. 우리들은 이 기쁨에 대하여 명 7일 이 면 구시장(舊市場)에서 조선독립 만세를 같이 부르려고 한다. 각 이민은 구 한국기 1개씩을 휴대하고서 와서 모이라는 취지의 정치에 관하여 불온 문구를 기재한 문서 1(증 제1)을 작성한 후 이민들에게 회람시킬 목적으로 피고 장수산이 이를 같은 동리의 구장인 조카 이종영(李鍾榮)의 집 앞에 놓아 두고 각 이민에게 회람시켜 많은 이민들을 선동함으로써 치안을 방해한 자이다. 위의 사실은 1. 당 공판정에서 말한 피고 양인이 판시함과 같은 취지의 자백 2. 사법경찰관의 증인 이종진(李鍾振)에 대한 청취서 중에 대정 845일 오후 3시 경 밭에서 돌아오는 도중 군자리(君子里)에 접근된 장곡리 남쪽 고개 길 노변에 봉투 속에 1통의 문서와 작은 돌이 봉하지 않은 대로 들어 있었다. 자기는 글자를 모르므로 이종형(李鍾亨)이란 자에게 읽어 달랬더니 “47일 만세를 부르니 면사무소에 집합하라는 사발통문(沙鉢通文)이라고 하며 그는 이것을 장곡리 이장 이덕증(李德增)에게 교부하였다는 취지의 공술 기재, 1. 사법경찰관의 증인 이덕증에게 대한 청취서 중에, ‘대정 845일 오후 6시 경 이민 이응수(李應洙)가 이종형으로부터 구장에게 교부하라고 하였다 하며 비밀통고문 1통을 자기에게 주므로 이것을 받아 가지고 읽어 보니까 오는 7일 대한독립만세를 높이 부를 터이니 구시장 자리에 면민은 집합하라. 모여 오지 않는 자는 후일 위해(危害)가 있을 것이다는 취지가 기재되어 있어서 자기는 후환이 두려워 곧 그 문서를 지정되어 있는 이웃 월곶리(月串里) 구장 앞으로 사환을 시켜서 보낸 일이 있다. 증 제1호는 즉 그 비밀통고문이다는 취지의 공술 기재가 있는 것과, 1. 압수된 비밀 통고문 1(증 제1)이 현존하는 등을 종합하여 이를 인정한다.

 

▲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되었을 때인 20살 청년 권희 선생-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 갈무리     © 심우일


세월이 흘러 광복이 되고 1955년에 권희 선생은 별세를 한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1990년에서야 3.1운동과 관련된 국가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서 건국훈장 애족장의 포상을 받게 된다. 국가보훈처의 공훈록에 기록된 권희 선생의 공적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경기 시흥(始興)사람이다. 191946일 시흥군 군자면(君子面) 장현리(長峴里) 자신의 집에서 일제의 학정에 대해 항거하기 위하여 47일 군자면(君子面) 구장터에서 독립만세시위를 하니 참가하라는 비밀통고서인 사발통문(沙鉢通文)을 작성하여 인근 각 동민에게 회람시키며 활동하다가 피체되었다. 이로 인해 19195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동년 7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고, 다시 상고하였으나 92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1990년에 받은 훈장과 훈장증(건국훈장 애족장)     © 심우일

 

권희 선생은 1900년에 태어나 사서삼경 등 한학을 공부하셨고, 서당 훈장님의 영향으로 약관의 나이인 20살에 독립만세 운동을 펼치려다가 사전에 일제에 의해 발각되어 갖은 고문을 당하고 1년의 징역살이를 하셨다. 감옥에서 출소한 뒤로는 육체적으로 고문의 후유증과 요시찰 인물로 감시대상이 되어 부자유한 삶을 살다가 5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셨다.

권희 선생의 서당 훈장이었던 권연(權衍)의 손자인 권창(87) 어르신은 집안 어른들께 들었다고 하면서 나이가 20살 인데 감옥소에 갔잖어. 일본놈들이 애를 못 낳게 감옥소에서 훑었어라며 권희 선생의 모진 고문에 얽힌 가슴 아픈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셨다. 아울러 선생의 나라 사랑 정신이 후대 사람들에게 온전히 계승되기를 간절히 바라셨다. 이런 마음이 이심전심일까? 내 마음에도 그의 마음이 들불처럼 번져든다.

일제 강점기 암울한 세상에서 살아있는 대한 청년의 기개로써 민족의 미래를 살리려 했던 청년 권희. 그의 삶의 궤적을 찾으면서 문득 도산 안창호 선생의 '낙망(落望)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는 말이 클로즈업 되었다. 그러면서 이제 내가 아니 우리 장현동 사람들이, 우리 시흥 시민들이 무엇인가 해야 할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엇은 많겠지만 우선 선생의 생가터에 독립유공자 표지석이라도 반듯하게 세우는 것은 어떨까?

 

▲ 창원시와 마산의사회가 주관해서 세운 공적비와 표지석을 겸한 비석     © 심우일

 

 

 

 

 

시흥만세 17/08/17 [13:24] 수정 삭제  
  우리 장현동에 정말 자랑스런 위인이 계셨네요 총명한 눈빛의 권희 지사님을 뵈니 가슴 뿌듯합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주간베스트 TO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