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몽시 - 우리 모두 꿈 속의 사람이라네
동우 | 입력 : 2017/04/09 [15:02]
主人夢說客
주인은 나그네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客夢說主人
나그네도 주인에게 꿈 이야기를 하네
今說二夢客
지금 꿈 이야기를 나누는 두 나그네
亦是夢中人
그 역시 꿈속의 사람들이라네
움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봄의 생명력에 기운을 빼앗긴 나머지 나른한 졸음이 슬그머니 곁을 노리는 시절이다. 덧없다는 의미의 일장춘몽이라는 말은 왜 하필 봄날의 꿈을 택했을까.
서산대사로 잘 알려진 청허당 휴정 스님의 이 삼몽시는 잠시 주막집 툇마루에 앉았다가 안쪽에서 들려오는 두 사람의 꿈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지은 즉흥시라고 한다.
밤에 꾸는 꿈은 짧은 꿈이요, 인생은 긴 꿈이라 하듯 불가에서도 자주 인생을 한바탕의 꿈이나 환상에 비유하곤 한다. 깨닫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잠에서 깨는 것이다.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은 잠에서 깨어나야만 알 수 있다. 물에 떠내려가는 꿈을 꿀 때, 세찬 물살과 나의 두려운 감정 모두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꿈을 깨고 나서야 그 모든 것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고 안도하는 것이다.
원효 스님의 말처럼 어떤 꿈을 꾸고 있던지 우리는 늘 편안한 침상에 누워있었을 뿐이다. 실상은 그것 뿐이다.
「술몽쇄언」이라는 책에서 ‘세계’라는 것을 이렇게 말한다.
"열 사람이 함께 잠을 잘 때에 제각기 꿈 하나씩을 꾸게 되면, 각자의 꿈속에는 천지만물이 있고 영광과 치욕이 있고 장수와 단명이 있을 것이다. 한 방 안에서 반나절 밤 사이에 열 개의 세계가 개벽되어, 오래거나 잠깐인 것이 서로 같지 않고, 감정과 대상경계의 차별이 이와 같다.
그리하여 갑의 꿈속에서 을의 꿈속 세계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을의 꿈속에서는 갑의 꿈속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환상 속에서 보는 것은 대개 환상의 경계 밖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삼천대천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 괴이하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는 꿈속의 나그네들로서 스스로가 이룩한 세계에서 울고 웃는다. 그럴 수밖에 없지만 다만 속지는 말아야 한다. 그 세계가 전부이고 완전한 실재라는 거짓에 속지만 않는다면, 아무리 슬피 울거나 기뻐한들 무슨 번뇌가 따르겠는가. 꿈인 줄 알기에 오히려 더 열심히 울고 열심히 웃을 수 있다.
서산 스님은 임종을 앞두고 당신을 그린 진영에 직접 다음과 같은 게송을 적으셨다.
八十年前渠是我 팔십년 전에는 그대가 나이더니
八十年後我是渠 팔십년 후에는 내가 바로 그대로구나
<저작권자 ⓒ 시흥장수신문(시민기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