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있다.

흥국사 단상(斷想)

소촌(蘇村) | 기사입력 2017/03/26 [10:30]

정답은 있다.

흥국사 단상(斷想)

소촌(蘇村) | 입력 : 2017/03/26 [10:30]

 

가노라 삼각산(三角山), 다시 보자 한강수(漢江水)

고국산천(故國山川)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時節)이 하 수상(殊常)하니 올동말동 하여라.(김상헌)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쑥대밭이 되었다. 청나라에게 패한 대가는 혹독했고, 임금과 신하, 그리고 백성들 모두는 그들의 원치 않는 요구를 모두 수용해야 했다. 당시 청나라와 끝까지 싸우기를 주장했던 주전파(主戰派)의 한 사람으로 청나라에 강제로 잡혀가서 갖은 고초를 겪은 신하가 김상헌이다.

 

 오늘 난 삼각산(북한산)이 손에 닿을 듯 말 듯 보이는 고양시 덕양구의 노고산(487m)에 올랐다. 봄 안개가 끼여 시야는 흐렸지만 삼각산 서북쪽의 윤곽은 그래도 들어온다. 갑자기 삼각산을 뒤로 하고 청나라에 끌려가던 김상헌의 모습이 클로즈업이 되었다.

 시조를 몇 번 되 뇌이며 행간에 숨은 그의 마음을 읽어내려고 했다. 또한 당시 상황에서 신하의 역할은 무엇이며, 임금은 어떠해야 하는가? 를 자문(自問) 해봤다. 더 나아가서 국가는 무엇인가? 까지도.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려고 나선 산행인데 과거와 현재가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 한 구석이 뒤숭숭해지는 시간이었다.

 

▲ 노고산 중턱에서 바라본 삼각산(북한산) 서북쪽의 모습     © 소촌(蘇村)

 

 펠로폰네소스 전쟁이후 혼란에 처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고민을 한다. 국민에게 행복을 주는 국가에 대해서. 그가 주장한 것이 바로 철인(哲人)이 통치하며 수호자 계급과 시민 계급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국가(理想國家), 즉 칼리폴리스(Kallipolis). 국민들에게 행복(happiness)과 덕(goodness), 그리고 선(virtue)을 한 아름 선사하는 정치체제를 바랬던 것이다.

 

 17세기 영국의 정치사상가 홉스는 주고 받음(give and take) 성격의 사회계약론을 리바이어던(Leviathan)에서 펼친다. 그는 나의 권리(주권)를 국가에 양도해주는 대신 나는 안전(평화)를 국가로부터 보장 받는다는 것이다. 가히 혁명적이다. 권력은 신으로부터 나온다는 당시의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부정하는 발상이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명확하게 제시했고 국가란 무엇인가? 대한 나의 고민에 대해 일정한 정도의 답을 주었다.

 

 부인들이 절개를 위하여 죽은 것은 모두 다 기록할 수 없었으며, 천인(賤人)의 아내와 첩도 자결한 사람이 많았다. 적에게 사로잡혀 적진에 이르러 욕을 보지 않고 죽은 자와 바위나 숲 속에 숨었다가 적에게 핍박을 당하여 물에 떨어져 죽은 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사람들이 전하기를, “머리 수건이 물에 떠 있는 것이 마치 연못물에 떠 있는 낙엽이 바람을 따라 떠다니는 것 같았다.” 하였다. <연려실기술 제26권 인조조 고사본말(仁祖朝故事本末)>

 

 비극적인 내용의 글이다.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가 청나라 군사에게 함락되면서 절개를 지키기 위해 조선의 여인들이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이 목숨을 버린 상황이다. 왜 그녀들이 스스로 생명을 버려야 했으며, 자결하는 순간 누구를 원망했을까?

 

 청나라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행군하여 큰 길에 세 줄을 지어 우리나라 사람 수백 명이 앞서 가고 한두 오랑캐가 뒤따라갔는데, 종일토록 그치지 않았다. 뒷날 중국 심양(瀋陽)에서 속()바치고 돌아온 사람이 60만이나 되는데…….

 임금이 차마 보지 못하여 환궁할 때는 큰 길을 경유하지 않고 서산(西山)과 송천(松川)을 거쳐 산을 따라가 신문(新門) 필시(筆市)에 들어가니, 길가에 어떤 노파가 손바닥을 치면서 크게 통곡하기를, “여러 해 동안 강화도를 수축하는데 검찰사(檢察使) 이하가 날마다 술 마시는 것으로 일을 삼더니, 마침내 백성들을 다 죽게 만들었으니 이것이 누구의 허물이냐. 나의 네 아들과 남편은 모두 적의 칼날에 죽고 이 한 몸만 남았으니, 하늘이여, 하늘이여하자, 듣는 사람 중에 슬퍼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연려실기술 제25권 인조조 고사본말(仁祖朝故事本末) >

 

 위 글에는 청나라에 끌려갔다 몸값을 지불하고 간신히 고향으로 돌아오는 백성을 임금이 차마 보지 못하여 피하는 상황과 통치자들의 무능으로 야기된 병자호란으로 말미암아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은 여인네의 절규가 확연히 드러나 있다. 구곡간장이 찢어진다는 표현으로 가정이 송두리째 파괴된 노파의 마음을 대신할 수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누가 그녀에게 하늘을 원망하며 살게 만들었던가?

 

흥국사(興國寺).

 노고산 산행의 길머리에 있었다. 사찰의 일주문 앞에 서니 습관처럼 한자를 보면서 의미를 연상해본다. 나라를 일으키는 사찰이라. 무슨 의미일까? 유래는 무엇일까?

 사찰의 유래는 대략 이러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조계종 직할교구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며, 신라시대인 661(문무왕 1)에 원효(元曉)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흥서사(興瑞寺)라고 했다.

 이후 원효가 북한산 원효대에서 수행 중 이었는데, 서쪽 산기슭에서 3일 동안 상서로운 기운이 있어 찾아갔더니, 지금의 약사전 자리에서 약사여래좌상이 솟아나 빛이 나고 있어 이 절을 창건했다고 했다. 지금의 사찰 이름과 직접적인 관련은 1770(영조 46)이었다. 영조가 우연찮게 이곳으로 친행(親幸)한 뒤 이 절의 약사불(藥師佛)이 나라를 흥하게 한다고 하여 절 이름을 흥국사(興國寺)로 개명하고, 약사전 현판을 친필로 써서 내려 주었다는 것이다.

 

▲ 노고산 등산로 입구에서 마주한 흥국사 일주문. 현판에 글씨가 興國寺라고 적혀있다     © 소촌(蘇村)


 조선의 르네상스인 영정조시대.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영조 임금이 흥국사로 개명을 한 것은 어떤 마음에서였을까? 아마도 조그마한 사찰일지언정 국가의 발전과 번영을 간절히 바라는 실심(實心)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나라를 일으킨다는 것, 흥국(興國).  그 의미는 무엇일까방법은분명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그러나 정답은 있었다.

 

 

위편삼절 17/03/29 [23:53] 수정 삭제  
  미세먼지 탓인지 사진 속 북한산의 모습이 흐려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글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그려지듯 읽히는 것이 아쉬움은 다 달래지고도 남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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