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염전에서 소금이 오는 소리를 듣는 홍노진(76), 47년 염부 생활을 접다

동주염전에 소금이 오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15/07/18 [21:55]

동주염전에서 소금이 오는 소리를 듣는 홍노진(76), 47년 염부 생활을 접다

동주염전에 소금이 오다

최영숙 | 입력 : 2015/07/18 [21:55]
▲ 47년간 소금을 생산했던 홍노진(76), 심인자(74)부부가 올 봄까지 소금을 생산했던 염판에 서다     © 최영숙


 지난 1일 동주염전을 다녀왔다.

 

대부도 방면에서 모임이 있었다. 모임이 끝나고 소금을 사러 동주염전으로 갔다. 10여 년 동안 다녔던 심인자(74) 전 대부도 부녀회장께 전화를 했다. 언제나처럼 반기셨다. 마침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도 산다고 해서 함께 출발했다.

 

▲ 2004년 8월 7일 홍노진, 심인자 부부를 처음 만난 날     © 최영숙

 

홍노진(76), 심인자(74)부부를 처음 만난 것은 2004년 8월 7일이었다. 혼자서 동주염전으로 사진을 찍으러 왔었다. 멀리서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소금을 걷고 있던 홍노진 씨가  "아, 남 힘들게 일하는데 사진을 찍느냐!"고 버럭 화를 내셨다. 그 말씀이 옳았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두 분 일하시는 것을 도와드렸다. 소금을 나르는 인륜차를 잘 몰았기에  두 분께 칭찬을 들었다. 일이 끝나자 품값이라며 소금 한 가마니까지 차에다 실어 주셨다. 그렇게 인연이 닿아 동주염전으로 소금을 사러오고 또 사진을 담았다. 

 

▲ 홍노진(76)씨가  47년간의 염부 생활을 말씀하다     © 최영숙

 

그렇게 인연으로 올해 소금을 사러갔던 것이다. 그런데 소금창고가 많이 비어있었다.

두 분이 올 봄에 몇 번 소금을 내고는 더 이상 소금을 생산하지 않는다고 했다. 서운함이 왈칵 밀려왔다. 이 분들과의 세월이 깊었던 것이다.

 

홍노진(76) 씨가 동주염전에 처음 들어왔을 때를 이야기 하셨다.

 

▲ 동주염전 간판     © 최영숙

 

"1968년도에 수원에서 13가구를 모집해서 왔다. 처음에는 토판이었다. 소금이 오면 곰배로 살살 긁어서 목도에 담아서 날랐다. 월급이 13,000원이었다. 쌀이 당시에 6,000이었다. 쌀 두 가마 값이었다. 당시 소금 값은 70㎏ 한 가마가 700원 800원 했다. 그때는 가마도 짚으로 만든 것이었다. 일당은 350원 했다. 당시는 배로 소금을 날랐다. 토판 다음에 옹기에서 4년 정도하고 타일을 깔았다."고 했다.

 

또한 "78년도에 전기가 들어왔다. 소금 포대들은 70㎏ 에서 60㎏ - 50㎏ - 30㎏ - 20㎏으로 바뀌었다.  90년도 까지는 월급제였다. 그러나 개인이 맡으면서 구역을 맡아서 하게 되었다. 옆 집하고 두 집이 3전 8반이다. 평으로 환산하면 5800평씩 나눠서 하는 것이다. 처음 할 때는 셋이서 했는데 나중에는 우종섭(58)씨네하고 두 집에서 했다." 며 "사람 구하기가 힘들다. 지금 하는 사람들도 모두 나이가 든 사람들이 농사일이나 다른 일들을 하면서 한다. 지금 20㎏에 12,000원에 판다. 주인과 4:6으로 나누는데 이곳에서 쓰는 모든 물자들을 우리가 감당하기 때문에 5:5로 보면 된다."고 했다.

 

▲ 홍노진(76), 심인자(74) 부부가 하던 염전에 동력이 꺼진 경운기     ©최영숙

 

"우리 동주염전은 최고의 소금을 만들어, 박정희 정권 때는 청와대로 1년에 500포대 씩 납품을 했어, 그러다 개인이 맡으면서 못했지. 지금은 신안소금을 알아주는데 이곳 타일에서 만든 것이 더 좋은 것이지. 경기도는 염전이 사라지고. 신안은 정부와 군에서 보조를 많이 해주는데 이곳은 보조가 하나도 없으니까 점점 쇠퇴하고 없어진다. 1968년 수원에서 왔던 13가구 중에 남은 사람은 우리뿐이다."고  했다.

 

"우리가 더 하고 싶은데 나이가 있고 머리도 뻣뻣해지고 감당을 못해. 아침과 오후 뙤약볕에 하니까 쓰러질 듯하고 막상 이러다 쓰러지면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봐, 서운하지만 그만 둔다. 아내가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도시에서 살다가 여기 와서 안 해 본 게 없다. 고맙고 미안하다."며 무뚝뚝하신 어르신이 처음으로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 홍노진(76), 심인자(74) 염부 부부 소금이 오는 시간을 설명해 주다     © 최영숙

 

47년 간을 남편과 함께 염부생활을 하신 심인자(74) 어르신은 언제 뵈어도 활기찼었다.

그러나 이번에 뵈었을 때는 많이 힘들어 하셨다. 

 

"내가 27살에 남편 쫓아서 이곳에 들어왔는데 이 염전에서 얻은 것은 우리 세 째 아들 밖에 없어. 들어오니 전기불도 안 들어 와서 사기등잔 키고 살고, 교통이 힘들어서 한 번 나가려면 하루 종일 걸리고, 나무하러 산에 다니다 몇 번이고 떨어져서 지금도 다리가 아파. 나문재를 다 베다가 땔감으로 썼어. 산과 물 밖에 없어서 나 안 살고 간다고 많이도 울었어,"라며 옛 이야기를 했다.

 

"아, 비가 오면 집 나갔던 개도 돌아오는데 여기는 전쟁이야. 염부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단도리를 해야 해. 그래서 지금도 천둥번개가 치면 무서워. 자식들에게는 염부는 우리 부부로 족하니까 모두 나가라고 해서 자식들은 모두 외지에서 살아."라며 고단했던 삶을 이야기하는 눈가가 젖었다.

 

▲ 소금꽃 피다     © 최영숙


 "물 잡을 때는 염도가 23도에요. 염도 26도면 소금이 뜨기 시작해. 그러면 아저씨가 '나오세요' 호출이 떠요. 그럼 나와서 함께 소금을 걷었지. 그러다 30도가 되면 확 깔리는 거야. 30도가 넘으면 염도가 세서 소금이 갈라지고 신 맛이 나. 그러면 사람에게도 해가 된다. 그래서 소금을 뜨는 것은 시간을 잘 마춰야 달고 맛있는 소금이 된다.' 고 했다.

 

 "그러나 막상 그만 두니 허무하고 내가 뭐 했나? 내 인생이 없는 거 같아. 염전에서 일 한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내 인생을 모두 여기에 바친 거다." 며 이제는 더 이상 소금을 만들지 않는 소금 밭을 바라보았다.

 

▲ 2009년 5월 송홧가루 소금이 될 때의 염판     © 최영숙

 

송홧가루 소금은 소금물을 풀어놓으면 노랗게 송홧가루가 물에 떴다.

 

2009년 5월 송홧가루 소금을 사러왔을 때 '소금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던 홍노진(76) 염부의 말소리가 들리는 듯한데 어느덧 이분들이 이곳에서 소금을 만들었던 시간이 47년을 넘어섰던 것이다.

 

▲ 홍노진(76) 염부 지금은 소금을 생산하지 않는 염판을 돌아보다     © 최영숙

 

홍노진(76)염부는 "서운 할 것도 없다"며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의 발길은 염판을 떠나지 못했다.  이제는 소금을 생산하지 않건만 당신이 돌보던 염판을 한 바퀴 꼼꼼히 돌아보았다.

 

▲ 홍노진(76)염부가 옆에서 같이 소금밭을 가꾸던 우종섭(58)씨에게 오늘 소금이 잘 왔다며 말을 건네다     © 최영숙

 

그의 발길은 옆집으로 향했다. 그곳은 우종섬(58), 김대자(56)부부가 하는 소금밭이었다. 오늘 소금이 잘 왔다.며 인사를 하고는 한 번 더 염판을 바라보고는 돌아갔다. 그 발길에 쓸쓸함이 묻어났다.

 

▲ 소금을 모아놓다     © 최영숙

 

오늘도 동주염전에서는 소금들이 풍성풍성 생산되고 있었다.

 

▲ 2005년 8월 5일 김대자(56) 씨를 만나다     © 최영숙

 

2005년 8월 5일 무협지의 여걸처럼 날렵하게 소금을 모으고 있는 김대자(56)씨를 만났었다.

 

▲ 소금을 모으고 있는 우종섭(58) 씨     © 최영숙

 

우종섭(58)씨가 "왜 이렇게 오랜만이냐"며 인사를 건넸다. 2004년 동주염전에 처음 오고 벌써 11년의 세월을 만난 것이다. 옆에서 함께 소금밭을 운영하던 홍노진, 심인자 부부가 이제 염판을 떠나서 마음이 어떠냐고 물었다. "늘 함께 하다가 어느 날 못하시니 마음이 많이 서운하지요."하면서 다시 힘차게 소금을 모았다.

 

▲ 소금을 실어 주는 홍노진(76)어르신     © 최영숙

 

이제 소금을 거두지는 못하지만 작년에 생산됐던 소금을 차에 실어주셨다. 간기가 쏙 빠져서 포대 밖을 만져도 뽀송뽀송했다. 두 분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소금이 깨끗하고 염도도 약해서 김치나 국을 끓이면 시원한 맛을 내던 홍노진(76), 심인자(74)부부의 동주염전 소금은 이제 만나기 힘들게 되었다.

 

▲ 2004년 11월 동주염전으로 소금사러 갔을 때 집 앞에서 두 분의 다정한  모습     © 최영숙


 무뚝뚝 하시면서도 속정이 깊으신 홍노진(76)어르신과 왈패같이 활기차면서도 남편 말에 순종하고 늘 애정이 넘치시는 심인자(74) 두 분이 만드는 소금은 만날 수 없어 서운하지만 그동안 정말 고생하셨다는 말씀을 드렸다.

 

젊은 사람들도 모두 떠나는 염판을 47년을 한결같이 지켰다는 것은 이미 할 일을 다 하신 것이다. 이미 정년을 넘겨도 훨씬 넘기셨던 것이다.

 

▲     ©최영숙

 

헤어지면서 심인자(74)씨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동주염전 소금이 좋으니까  또 오시고 우리집도 포도 익으면 그냥 놀러오세요."했다.

 

두 분은 이곳이 고향과 같다고 했다. 제2의 고향에서 두 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시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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