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항(팽목항)에서 합동분향소까지 기록하다

세월호 침몰 사고 기록

최영숙 | 기사입력 2014/05/20 [17:58]

진도항(팽목항)에서 합동분향소까지 기록하다

세월호 침몰 사고 기록

최영숙 | 입력 : 2014/05/20 [17:58]

 

▲ 진도항(팽목항)에 걸린 자식을 찾는 엄마의 리본     ⓒ최영숙


“아들 기수야! 어서 와. 엄마 왔어.” “오늘 꼭 와 혜선아!”

지난 9일 진도항(팽목항) 방파제에 걸린 노란 리본은 차마 마주 보기가 힘들었다. 생떼같은 자식들을 창졸간에 잃고 자식의 시신이나마 찾는  부모들의 마지막 소원이었기 때문이다.

▲ 오늘도 정확함이 생명인 모든 방송에서 진도항을 팽목항으로 부른다.  사회의 약속으로 적혀있는 진도항을 한 달이 지나도록 팽목항이라고 부른다. 무엇이 정확한 것인지 혼란이 왔다.  그냥 적혀 있는 대로 시키는 대로 진도항이라고 기록했다. ⓒ최영숙

 
신속보다 정확함이 생명인 모든 방송에서 오늘도 진도항을 팽목항이라고 부른다. 사회의 약속의 표시는 진도항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곳이 진도항인가 팽목항인가 혼란이 왔다. 안내판에 진도항이라고 적혀 있는대로 진도항이라고 적는다. 원칙이 철저히 무시된 세월호의 비극은 이렇듯 작은 원칙의 무시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를 기록하면서 인터뷰를 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처들이 깊었기에 말을 건네기도 힘들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마음을 눈물로 또는  리본에 혹은 종이에 글로 적어 벽에 붙였다.  자식과 친구를 부르고, 내 자식 같은 아이들을 불렀다. 글속에는 그 마음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 '신원확인소 가는 길' 안내판 하나가 사람을 이렇게 울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최영숙

진도항(팽목항)으로 가는 길에 '신원 확인소 가는 길' 표시가 있었다. 단장의 슬픔으로 이 길을 따라 갔을 부모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안내판 하나가 사람을 이렇게 눈물 짓게 하는 걸 이 나이가 되어 처음 알았다.

▲ 진도항(팽목항) 바다 앞에 차려진 밥상에는 우유를 좋아했던 아이는 우유를, 생일을 맞은 아이는 케익을, 피자를, 생시에 좋아했던 음식들을 차렸다.     ⓒ 최영숙


바다를 향해 밥상이 차려졌다.  부모는 자식이 좋아했던 음식들을 놓았다. 우유, 피자, 케익, 고구마와 온갖 과일과 떡을 차려주었다.

▲ 진도항에서 바다를 보다     ⓒ 최영숙

 
최초로 119로 신고했던 덕하 학생의 어머니 편지가 붙어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 덕하에게

너와 내가 함께했던 순간은 짧지만 엄마는 너를 아주 많이 사량했고 너 또한 엄마를 많이 사랑했던 걸 우리 서로 잘 알잖아. 너무 가슴이 아프다. 이 모든 것이 왜 일어났는지... 어른들의 비양심적이고 무책임한 행동들 때문에 꽃다운 어린아이들이 물 속에서 죽어간 것이 아닌지 너무나 슬프단다.

너를 잃은 아픔이 너무나 크지만 많은 사람이 널 기억해 주고 기도해. 네가 분명 좋은 곳으로 갔으리라고 생각이 들어. 엄만 우리 덕하가 119에 최초로 신고했다는 것을 늦게야 알았어. 우리 아들 참 자랑스럽고 믿음직스럽고 장하다.

덕하야. 너를 사랑했던 이 소중한 순간들 영원히 간직할게. 너도 좋은 곳에 가서 하느님 나라에 가서 엄마 기다리고 있어. 엄마 가는 날까지...우리 꼭 다시 만나자.

그리고 아직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네 친구들 모두 구해줘. 이제 여기는 잊고 아직 물 속에 있는 네 친구들을 부탁해. 그리고 배 안에 남아 있는 모든 사람들 다 구해주시라고, 다 건져주시라고 하느님께 부탁해줘.

영원히 사랑한다 아들아. 우리 아들아 너를 한 번 안고 싶다. 내 품에 안아보고 싶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잘 가라. 그리고 도와줘라.

최덕하 요한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 진도항(팽목항)에 밤이 왔다. 잠들지 못하는 진도항은 환했다.     ⓒ 최영숙


진도항(팽목항)에 밤이 되었다. 진도항은 잠들지 못했다.

▲ 진도 실내체육관의 유족들 또한 잠들지 못했다. 군데군데 자리를 비워졌다.     ⓒ 최영숙



진도 실내체육관으로 왔다. 자원봉사자가 2층에 조용히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림자 같았다.
자원봉사자를 위한 J(진도)- 수칙이 있었다.

1. SNS에 실종자 가족 모습을 올리거나 자신의 기념사진을 찍지 않는다.
2. 가족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3. 가족이 화를 내면 조용히 듣는다.
4. 이동할 때 발소리를 내지 않는다.
5. 음식은 낮은 자세로 권한다.
6. 절대 웃거나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7. 기업은 자원봉사를 홍보하지 않는다.
8. 내 가족의 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9. 봉사자간 격려하거나 수고했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10. 음식을 먹을 때도 경건한 마음으로 남기지 않게 먹는다.
11. 가족의 마음으로 봉사에 참여한다.
--- 우리는 가족입니다.

그나마 우리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이런 분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벽에 쓰인 글들     ⓒ 최영숙


“민경아! 사랑하는 이쁜 딸 빨리 돌아와. 따뜻한 집으로 가자. 빨리 와라.”

“사랑하는 내딸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이제 그만 차디찬 물속에 있지 말고 엄마. 아빠 품으로 돌아와. 꼭꼭 부탁할게.”

“건계야. 엄마 아빠 힘내게 좀 나타나다오” -이모가

“영인아! 많이 보고 싶다. 엄마 아빠는 물론 너를 사랑하는 가족들이 모두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 빨리 돌아와 가족 품에서 따뜻하게 쉬렴. 사랑한다.”

자식을 부르는 부모들의 애끓는 글들은 가슴을 뻐근하게 했다.

▲ 임시 합동분향소를 찾은 유족과 참배객들     ⓒ최영숙


안산의 임시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아, 이토록 많은 이들이 숨졌단 말인가!  숨이 막혀왔다. 부모가 어린 자식의 죽음 앞에 무릎을 꿇고 오열했다.

▲ 5월 8일 어버이날 합동분향소를 찾은 부모들은 카네이션 대신 노란 리본을 달았다.     ⓒ 최영숙


5월8일 어버이날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를 찾은 부모들은 노란리본을 달았다. 몇 번을 찾아도 사진을 담는이나 안내하는 사람, 참배객 모두 눈물이 하염없었다.

▲ 스승의 날에 합동분향소에서 선생님께 꽃을 드리고 눈물 짓는 제자들     ⓒ 최영숙


5월15일 스승의 날, 제자들은  선생님께 꽃을 드리고, 편지를 쓰고, 눈물을 흘렸다.

▲ 나이키 운동화를 가져온 시민과 부모는  아들과 함께 던졌던 야구공을 영정 아래 올려놓았다.     ⓒ 최영숙



“내 아들 호연아! 16년 5개월, 짧지만 아들 땜에 참 많이 행복했다. 고마워. 미안하고 사랑해”

16년 5개월, 자식과의 시간이었다. 자식과 보낸 시간을 헤아렸을 그 가슴저림이 전해졌다.

▲ 화랑유원지 합동 분향소에서 실종자들의 빈 자리가 더욱 커 보였다.     ⓒ 최영숙




실종자들의 빈자리가 더욱 커 보였다.

▲ 주저앉아 우는 참배객     ⓒ 최영숙


슬픔을 이기지 못한 참배객이 주저앉아 어린이처럼 울었다. 대한민국이 모두 울었다.

▲ 벽에 붙은 글들     ⓒ 최영숙


단원고등학교 벽에도 많은 글들이 적혀 있었다.

“우리 이쁜 연화 마니 아프고 고통스러웠지...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항상 가슴속에 묻고 다닐게. 절대 잊지 않을게. 따뜻하지? 혼자 오래 두지 않을게. 다음 생에도 둘도 없는 친구하자. 사랑해.

”지인아! 많이 추울텐데 왜 아직 못 나오고 있니... 이쁘고 환한 니 얼굴이 너무나 보고 싶구나. 지인 엄마! 조금만 더 기운 차리고 힘내자... 지인이 곧 돌아 올 거야.“

"우진아! 그 추운 곳에서 얼마나 힘들었니? 해줄 수 있는 말이 이것뿐이라 미안해. 좋은데 가서 편하게 쉬렴, 미안해. 미안해”

“철민아 보고 싶다. 원석아 미안해. 진용아 잊지 않을게. 진환아 그립다. 세영아 사랑해. 민경아 빨리 와. 예진아 보고 싶다. 수경아 그립다. 혜경아 미안해. 세희야 늘 잊지 않을게.”

친구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는 저 마음을 어찌하나! 살아 남은 이들의 저 깊은 상처는 어떻게 치유하는가 걱정이 되었다.

▲ 단원고 학생들의 촛불 기원제     ⓒ 최영숙


5월 9일 단원고 학생들의 거리 행진과 촛불 기원제가 있었다. "어른들은 그 자리에서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하지만, 가슴에 묻어두기만 하면 가슴이 터질것 같다."고 했다.

▲ 단원고 학생들 '잊지 말아 주세요' 거리 행진을 하다     ⓒ 최영숙


제발 잊지 말라고 했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 진도항(팽목항) 해가 저물다     ⓒ최영숙


20일 현재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탑승객 476명에 구조자 172명, 사망자는 287명, 남은 실종자는 17명이다. 아직도 진도항을 떠나지 못하는 가족들.  

오늘도 저 차디찬 바다에 있을 식구 생각에 안절부절할 가족들을 생각하면 평범한 이 일상들이  미안했다.

▲ "제발 마지막 한 명까지 찾아 주세요" 유가족 일동 현수막     ⓒ최영숙

 
현재 남은 실종자 17명 모두를 찾기를 기원했다. 참으로 마음 아픈 기록이었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과 남은 유가족 분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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