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은 마지막까지 있어야 한다"

세월호의 진정한 영웅이었던 고 박지영씨의 영결식

최영숙 | 기사입력 2014/04/26 [21:16]

"승무원은 마지막까지 있어야 한다"

세월호의 진정한 영웅이었던 고 박지영씨의 영결식

최영숙 | 입력 : 2014/04/26 [21:16]
▲   고인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자원한 시흥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에 의해 정중히 운구 됐다   ⓒ최영숙


“승무원들은 마지막까지 있어야 한다”며 세월호 침몰 당시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 숨진 승무원 고 박지영(22)씨의 영결식이 지난 22일 오전 9시 인천시 중구 인하대에서 가족과 지인들의 오열속에 치러졌다.

▲ 빈소에는 "당신의 그 용기 우리들은 잊지 않겠습니다."등 고 박지영씨를 기리는 글들이 벽면에 적혀 있었다.     ⓒ최영숙


지난 22일 고 박지영씨의 빈소를 찾았다. 빈소에는 “당신의 그 용기 우리들은 잊지 않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영웅으로 길이 남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영웅 고 박지영님이 계신 곳입니다.” 등의 글이 붙어 있었다.

발인 예배가 끝나고 박씨의 시신은 고인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자원한 시흥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에 의해 정중히 운구 됐다.

영결식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원혜영 의원과 이성만 인천시의회 의장, 김윤식 시흥시장, 이귀훈 시흥시의회 의장과 인천·시흥시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 고 박지영씨 영정이 신천동 자택을 마지막으로 들르다     ⓒ 최영숙


고 박지영씨는 시흥시 신천동에 거주했으며 연성초등학교, 소래중학교, 시흥고등학교를 나왔으며 수원과학대학교를 휴학 중이었다. 운구차가 마지막으로 신천동 자택을 들렀다. 신천동 자택 주위에는 많은 주민들이 나와 고 박지영씨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운구차는 고인이 생전에 다녔던 신천동 골목길을 돌고 화장을 하기 위해 부평승화원으로 향했다.

 

▲ 인천승화장에서 어머니 깊은 슬픔에 젖다     ⓒ최영숙


"지영아 사랑한다. 사랑한다. 엄마가 우리 지영이 사랑한다."며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애끓는 오열은 멈추지 않았다.

▲ 인천승화원에서 고 박지영씨가 화장으로 모셔지는 동안 휴계소 텔레비젼에서 세월호와 소식을 전하다     ⓒ최영숙


고 박지영 씨의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텔레비전에서는 세월호 소식을 뉴스특보로 알렸다. "제발 돌아와줘", "조금만 더 힘내자" 는 단원고 선·후배들의 응원을 저 차가운 바다에 갇혀있는 창창한 우리의 아이들이 보고 나온다면 살아있는 어른들은 뭐든지 할 수 있을것 같았다.

▲ 부평승화원의 비상시 행동요령 안내판을 보았다. 비상시 행동요령 대로만 했다면 그 많은 승객들이 그렇게 무참히 수장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영숙


세월호의 침몰과 함께 가장 먼저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  우리의 아이들은 배 안이 더 안전하다는 안내방송을 듣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구출 될 것을 믿었을 것이다. 빛나는 청춘들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조금 더 있었음에도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잃었다. 어른들이 죄인이었다.

“승무원들은 마지막까지 있어야 한다”고 했던  22살의 이 젊은이가 알고 있는 이 간단하고 엄숙한 사실을 더 많은 세월을 살아낸 사람들은 몰랐단 말인가. 가슴이 막혀왔다.

▲ 시간도 멈추고 쉰다는 '시안'가족묘원에  고 박지영씨가 아버지와 함께 영면에 들다     ⓒ 최영숙


고 박지영 씨의 화장이 끝나고 인천승화원에 있던 아버지 유골함과 함께 광주시 시안 가족묘원에 묻혔다.

어머니는 “우리 새끼 사랑한다. 내 새끼 지영아 잘 가거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모부는 “지영아! 모든 것 다 잊어버리고 가거라. 이제 다른 곳에 태어나서 네가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살아라. 장하다 우리조카 박지영”이라고 인사했다.

▲ 모든 장례절차를 끝내고 인하대 병원으로 돌아오다     ⓒ 최영숙


장례식과 하관식까지 모든 일정이 끝날 때까지 시흥시 관계자들이 함께 있었다. 인하대에서 유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박태진 시흥시 안전행정 국장은 “세월호 침몰사건에 관련해서 시에 거주하고 있거나 추정되는 분들의 사망, 실종에 관련해서 상황실을 설치하고 직원들이 교대 근무하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은 실종으로는 정왕동에 거주하는 단원고 학생 2명과 조선족 신혼부부 등이 있다. 고 박지영님 같은 경우 빈소지원, 장례지원 등을 했다. 가족 분들이 납골 묘를 원해서 광주시 시안 가족묘원으로 가셨다. 희생정신으로 돌아가신 박지영님과 사망과 실종에 가슴이 아프다. 두 번 다시 이번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했다.

▲ 시민들이 단원고등학교 교문 앞에 촛불을 켜고 학생들의 명복과 무사귀환을 바라는 촛불을 켜다.     ⓒ 최영숙


승무원은 마지막에 떠나야 하는 것을 몸으로 말해 준 고 박지영씨는 진정한 어른이었으며 또한 인생의 찬란한 꿈을 꾸는 숙녀였다.

고 박지영 씨를 의사자로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세월호의 진정한 선장이었다. 정직원이 아닌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이었던 고 박지영 씨는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자신의 목숨을 의가 행하는 대로 초개와 같이 버렸다. 과연 누가, 얼마나 그럴 수 있을것인가. 국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우를 해주어야 한다.

그것만이 도대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저 두 눈 뜨고 애들을 떠나 보내야 했던 살아남은 자들이 할 수 있는 비겁한 위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 박지영 씨를 비롯한 모든 분들의 영면과 살아남은 이들의 깊은 상처에도 심심한 위로를 드린다.

겨우 할 수 있는 말은 "어른으로서 정말 면목없고 미안하다."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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