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마다 목백일홍이 핀 경주를 다녀오다

<연재>최영숙의 발길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기사입력 2008/09/13 [04:13]

능마다 목백일홍이 핀 경주를 다녀오다

<연재>최영숙의 발길따라 가는 풍경

최영숙 | 입력 : 2008/09/13 [04:13]

 

▲ 대릉원에 목백일홍 피다     © 최영숙


대릉원은 '미추왕은...재위 23년 만에 돌아가니 대릉에 장사 지냈다'라는 삼국사기 기록에서 대릉원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지난 겨울 이곳에 왔을 때 대릉원의 능들 앞에 목백일홍들이 서 있었다. 목백일홍이 피면 능과 함께 어울릴 어느 풍경이 상상되었다. 목백일홍이 피면 경주에 오리라 생각했다.주위에 목백일홍들이 피고 경주가 궁금했다.마음에 담으면 그 장소에 가게 되어 있다.

2008년 9월 6일 아침 대릉원에 마음과 함께 몸도 머물러 있었다. 

 

▲ 능 사이로 감나무와 목백일홍 나무가 어울려 있다.     © 최영숙


경주를 생각하면 한 2~3년 이곳에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이틀이나 삼일 머물다 오는 경주는 늘 마음이 급하게 만들었고 허기지게 했다.천천히 해가 뜨고, 석양이 능 너머로 넘어가는 풍경을 또 바람이 부는 등의 이곳의 일상적인 풍경을 천천히 담고 싶은 염원이 드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대릉원의 능과 능사이에 감나무가 머리를 빼꼼히 내놓고 있었다.목백일홍 나무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주고 있었다.정적인 능의 풍경과 화려한 꽃을 피어내는 목백일홍의 모습이 이질적이면서도 어울렸다. 
 
 

▲ 대릉원 황남대총에서 시내를 바라보다     ©최영숙

황남대총은 현재 경주 시내 중심가 대규모 고분군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제98호분으로서, 황남동에 소재한 신라 최대의 고분이라는 뜻으로 1980년 문화재위원회 회의에서 ‘황남대총(皇南大塚)’이라는 별칭이 부여된 것이다. 남분과 북분, 2개의 무덤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북분에는 은제허리띠를 비롯하여 각종 귀금속제용기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품 중 은제허리띠에는 ‘부인대(夫人帶)’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피장자는 여자로 추정되고 있는데, 고고학자 이종선의 최근 연구 <고신라왕릉연구>에 의하면 황남대총의 남분과 북분을 내물왕 부부의 무덤으로 간주하였고, 따라서 북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내물왕(奈勿王)의 비(妃)인 보반부인(保反夫人)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미추왕의 딸, 보반부인은 미추왕에게 후사가 없자 말구각간(末仇角干)과 휴례부인(休禮夫人)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이와 결혼하여 왕비가 되었고 아들을 낳아 왕위를 잇게 하였는데, 그가 곧 눌지왕이다.

황남동에서 제일 큰 황남대총을 포함한 대릉원의 아침 풍경은 고요했다.

 

▲ 대릉원의 연못과 목백일홍과 새     © 최영숙


연못에 비춘 목백일홍과 능과 새 한 마리까지 아침의 고요 속에 있었다.산책을 하는 어느 시민은 조심스럽게 능에 인사를 하고 조용조용한 걸음으로  능 주위를 산책했다.이분들이 능을 대하는 정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 새벽의 김인문 묘     © 최영숙


다음날 새벽 5시에 서악리 고분군에 도착했다.날이 밝기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했다. 김인문의 묘를 사진에 담았다.어둠 속에 빛나는 목백일홍의 모습이 새로웠다.

  

▲ 서악리고분군에 해 뜨다     © 최영숙


6시 41분 해가 뜨기 시작했다.그러나 해는 짙은 안개에 쌓여 자신의 빛을 드러내놓지 못하고 있었다.깊은 안개는 서악리 고분군을 몽환적인 분위기로 만들어내고 있었다.마치 서악리고분군이 마치 커다란 샤워부스안에 들어선 듯했다.안개에 쌓여 함께 두둥실 떠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묘해졌다.물기를 그득 먹은 주위의 풍경들은 한 줌 안개를 잡으면 물이 주루룩 흐를 듯했다.아침 안개가 빚어내는 몽환적인 풍경에 한참을 안개속을 헤매도 좋을 듯했다.

 

▲ 안개속을 산책 하는 주민들     © 최영숙


땅의 기운들이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이른 새벽부터 이곳 주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이렇게 아름답고 고풍적인 곳에서 운동을 하는 분들은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 서악리고분군의 아름다운 선     © 최영숙


능을 이루고 있는 선들이 아름다웠다. 마치 여인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고 있는 듯했다. 능에서 생명력이 넘치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 서악리고분군 봉분 위의 뱀 허물     © 최영숙

 
능 위에 있는 흰 물체를 보고 처음에는 이곳 능을 관리하는 분들이 일을 하다가 이곳에서 새참을 먹고 나무 젖가락 비닐봉지를 버렸나 했다. 쓰레기를 주우려고 가까이 다가서서야 그것이 뱀이 허물을 벗은 껍질이라는 것을 알았다. 놀라서 한 걸을 물러섰다. 꼭 주위에 허물의 주인이 있는 듯해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이 높은 곳까지 오른 뱀과 이곳에서 허물을 벗고 슬렁슬렁 내려갔을 뱀을 생각하자 그 녀석은 전생에 왕족이었었나 하는  싱거운 생각이 들었다.

허물은 이제껏 자신과 한 몸을 이루던 것을 버리고 떠나는 행위이다. 떠나야 할 때 떠나지 못한다면 뱀은 자라는 제 몸을 감당하지 못해 자신이 감옥이 되어 폭발될 것이다. 

사람의 관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 번 맺은 인연은 먼저 떠나지 않는다를 원칙으로 살았다. 그러나 가끔  휴대폰에 저장된 사람들을 올려다 볼 때가 있다. 그러면 그간 사람들과의 관계가 드러났다.  
 
다시 올 수 없는 먼 여행길을 떠난 분도 있었고  이제는 소식이 닿지 않는 사람까지 있었다. 사람의 인연은  떠날 사람은 떠났다. 영면에 든 분의 번호도 지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늘 살아계시듯이 어느 순간 떠올릴 때 그리움이 된 분들이었다. 저장된 전화번호를 보는 것으로도 한 순간에 그간의 시간들이 스쳐가는 것이었다. 감사했던 인연들 이었고 다시 한 번 그분의 영면을 위해 기도 드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연락이 끊긴 사람을 보면  “달이 차면 기우나니”를 가만히 읍조리는 자신을 보았다. 기우는 달이 다시 차서 만나면 또 새로운 만남 인 것이고 달이 기울면서  떠나지만 여기까지가 인연인 것이다. 적어도 그동안의  만남이 최선이었다면 그러면 된 것이다.  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살아가면서  각자 허물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크기의 몸집에 맞는 새로운 허물을 쓸 것이다. 그 허물이 좀 더 넉넉하기를 바랬다. 나중에 벗을 허물이 점점 커질수록 그렇게 연륜은 쌓이고 사람을 이해하는 폭도 넓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살아가면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허물을 벗고 더 너른 세상으로 들어선다면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다고 할 것이다. 



▲ 서악리고분군꽃, 안개, 마을     ©최영숙


무릇들이 한창 꽃들을 피우고 있었다.  이 커다란 능에 자잘하게 피어나는  꽃들로 인해 이곳은 더욱 풍성해지고 생동감 있게  변했다.  햇살이 쏟아지면서 마을이 가까이 보였다. 안개가 걷히면서 서악리고분군들이 새롭게 하루를 시작하듯이 이곳의 분위기가 경쾌해졌다.

 


▲ 서악리고분군에 반달 뜨다     © 최영숙


9월 7일 저녁 안개에 젖어서 몽환적인 아침 풍경을 보여줬던 서악리고분군으로 석양을 보러왔다. 그러나 석양은 볼 수가 없었다. 대신에 반달이 뜨는 풍경을 만났다. 어두운 능선 뒤로 반달이 떴다. 이제 일주일 후면 한가위 둥근 보름달이 이 능 뒤에 뜨겠다는 생각을 했다. 

 


▲ 대릉원의 야경     © 최영숙


서악리 고군분에서 대릉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릉원의 야경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오롯이 서 있는 나무와 가로등 그리고 능과 그림자가 한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저 굽은 나무에서 꽃잎들이 분분히 떨어지면 어떤 풍경을 만들어 낼까 상상해 보았다. 저 꽃이 필 때 이곳에 다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은 시간 중에 허락된다면 그 풍경을 담아낼 것이다.

  


▲ 대릉원에 등불을 켜다     © 최영숙

능마다 등불을 켠 듯했다. 가로등 불빛을 따라 사람들이 간간히 산책을 했다.

이제는 반달의 빛이 강해서 부숴져 보였다. 멀리 시내가 내려다 보였다.  경주는 고도제한을 하는 곳인 듯했다. 그래서 고층 건물들로 인해  막히는 풍경이 적었다.  바라보는 풍경이 시원했다.  경주의 이 고풍스런 분위기와 다른 곳에 없는 문화상품으로   관광객을 모으고 주민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생활을 하는 그 상생의 관계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대릉원의 노부부     © 최영숙


산책을 나오신 노부부가 다정히 앉아서 도란도란 말씀들을 나누고 계셨다.  두 분이 황혼을 아름답게 보낸다는 생각을 했다.  능을 넘지 못한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어르신들 뒤로는 젊은 연인이 능 아래에서 까르르 웃음을 지어가며 술래잡기를 하듯이 서로를 잡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거침없는 젊은 남.녀의 웃음소리가 이 고요한 능들을 흔들어 대는 듯했다. 예전 같으면 눈살을 찌프렸을 풍경이었는데 나이가 주는 넉넉함인지 그 모습이 싱그럽고 아름답게 보였다. 천년을 잠든 이곳 능 주인들도 그들의 웃음에 싱긋 웃을 듯했다.  얼마나 많은 청춘남녀들이 천년이 넘는 동안 이곳 능에서 그 시대에 맞는 사랑들을 속삭였을까 싶었다.  어쩌면 불교국 이었던 신라의 오래전 왕와 왕비의 환생들이 저 젊은이들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진을 담다 보니 젊은 남녀는 어디론가 떠나고 노부부만이 오래도록 한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천 년 동안 또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삶의 터전을 이루고 살았을까 싶었다. 100년 후에는 또 다른 복장의 노부부들이 또  다른 젊은이들이 서로의 사랑의 확인하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생은 얼마나 유한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목백일홍 흐드러지다     ©최영숙


목백일홍 꽃을 보러 간 경주의 3박 4일은 짧았다. 늘 아쉽고허기진 마음을 가지게 하는 곳이 경주였다. 

내일 한가위가 되면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이 경주의 모든 능 위로 떠오를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시간이 되면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은 곳이 경주가 되었다. 사랑하는 장소가 많아진다는 것 행복한 일이고 또 다시 뭔가에 집착을 가지게 된다는 일 두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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