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호 사랑방 소금창고'

<연재>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07/09/01 [00:43]

'8호 사랑방 소금창고'

<연재>소금창고를 복원하다

최영숙 | 입력 : 2007/09/01 [00:43]
▲ 봄날, 사랑방 창고 멀리 보이다     ©최영숙

 
월곶에서 방산대교 방향으로 들어서면서 8번째 소금창고 사랑방  창고가 멀리 보였다.  
 
어느 날부터 이 방향으로 들어서서 포동 벌판이 바라보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서로의 관계를 길들이는 어린 왕자와 여우의 밀밭처럼  멀리서 보이는 벌판에 흔들리는 갈대만 보아도 아, 이곳이 소금창고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던 것이다. 이 벌판과 소금창고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행복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벌판을 바랄 볼 수 있다는 것과 나이가 제법 들었음에도 가슴이 뛴다는 이 살아있음이 감사하고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포동 벌판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이때였다. 묵은 갈대와 새롭게 돋아나는 갈대들로 경계를 이루고 있는 갈대들을 보는 일은 매년 보면서도 늘  새로웠다. 
 

▲ 폭우 쏟아지던 날 사랑방 소금창고 물에 잠기다     ©최영숙

 
사랑방 창고를 생각하면 하늘에서 양동이로 물을 쏟아붓는 듯하던 2006년의 여름이 생각났다.  양철지붕 부딪는 소리와 통통 튀던 빗방울 소리와  집어삼킬 듯 쏟아져 내리던 물들까지 그날의 강렬했던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 폭우 쏟아지던 날 코뿔소와 코끼리 강을 건너다     ©최영숙

 
폭우가 쏟아지자 내만 갯벌은 모인 빗물과 바닷물로 그득 찼다. 갯벌 벽은 우기 때의 아프리카 초원의 강을  코뿔소와 코끼리들이  건너는 듯했다.  '우우'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며  건너는  짐승들의 모습과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 포동 갯벌 비오던 날의 칠면초와 빗방울 파문들     ©최영숙

 
연분홍 치마가 휘날리는 듯하던 칠면초를 보면서 가벼운 멀미가 났었다. 그곳에는 색이 빚어내는 절정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아직도 그날의 풍경이 눈에 어린다.  그러나 이제는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포동의 벌판에 가면 이 풍경을 만날 수가 없다. 이제는 칠면초 자체를 만나기 힘든 것이다.
 

▲ 사랑방 창고 하늘위에서 푸른 물고기 노닐다     ©최영숙

 
사랑방 창고의 지붕 위로 푸른 물고기들이 망망대해를 헤엄치고 있었다. 
 

▲ 사랑방 창고의 창문     ©최영숙

 
사랑방 창고의 안으로 들어서면  이 창고의 느낌은 뭔가 좀 달랐다. 군불을  훈훈하게 지핀 토담집 사랑방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윗목의 화로에서는 감자와 고구마가 익어가고 사람들은 도란도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하는 듯했다.
 

▲ 사랑방창고와 눈꽃 칠면초     ©최영숙

 
눈이 내렸다. 사랑방 창고를 슬쩍 비껴서 만났다. 갈대의 날카로운 선들이 칠면초의 여린 부분에 닿았다. 세상은 그렇게 부딪고  만나고 섞여서 갔다.

▲ 사랑방 창고와 승마하는 사람들     ©최영숙

 
갯골 건너편으로 사랑방 창고와 승마를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바닷물이 그득하게 올라왔다.  물에 반추되는 풍경들이 잔잔하고 부드러웠다.
 

▲ 사랑방 창고 위로 눈발 날리다     ©최영숙

 
눈발이 흩날리던 날의 벌판은 넓고 창고는 단단했다.  촉촉하게 젖은 벌판은 다가올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 파괴된 사랑방 창고     ©최영숙

 

'8호 사랑방  소금창고'도 파괴되었다.  소금창고와 벌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설렜던 포동 벌판은 이제는 가슴 한끝을 찌르는 듯한 통증과 함께 바라보게 되었다. 소금창고가 있었던 곳을 바라본다는 것은 아픔이었다.  아름다움을 흠뻑 보여줘서 익숙했던 시선이 철저히 파괴된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가슴이 선뜩하게 내려앉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길들여졌던 포동의 벌판에서 소금창고가 사라진 뒤로는 습관처럼 바라보게 되는 시선을 황급히 걷어 들이게 되었다.

 

어린 왕자와 여우가 공유했던 아름다운  밀밭은  영원히 사라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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