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으로 소금 한 가마니를 얻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05/08/16 [00:00]

정으로 소금 한 가마니를 얻다

최영숙 | 입력 : 2005/08/16 [00:00]

 "순간의 선택이 십 년을 좌우한다." 유명했던 전자제품 광고문이다. 그러나 나는 순간의 선택이 십 년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선택하는 순간들이 모여 생을 만든다는 생각이다.  늘 부딪치는 갈림길에서 선택하게 되는 결정들은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특별한 경험을 갖게 한다.  삶의 방향 물줄기를 한 순간에 바꾸는 것이다.  그것이 깊으면 운명이라 하고 뒷 날의 결과에 따라 운이라고도 하고 악운이라고도 한다.  내게는 어느날 시작된 동주염전에서의 소중한 인연이 있다.

작년 여름 어느 날 예전에 한 번 가 보았던 동주염전이 가 보고 싶어졌다.  중동에서 오후에 출발했다.  시화방조제를 들어서니 차가 꼼짝 하지 않았다.  토요일과 피서철이 겹친 것을 깜박했던 것이다.  염전은 소금을 걷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시간을 잘 맞춰서 가야 했다.  마음이 조급한 것과는 달리 차는 꼼짝 하지 않았다.  차가 너무 밀려서 되돌아갈까 했다. 그러나 못 보면 그만이지 하는 마음으로 가던 길을 갔다.  대부도를 들어서면서 차량은 조금씩 소통이 됐다.  염전에 늦게 도착을 했다.  동주염전을 혼자서 이렇게 오기는 처음이었다.


  시간이 늦지는 않았다. 마침 소금을 걷으려고 아저씨가 나오고 계셨다.
예전에 뵈서 안면이 있는 아저씨는 반갑다고 아는 척을 하는 나에게 저쪽으로 가면 염전이 많으니 그쪽에서 찍으라고 한다.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예! 하고, 뒤돌아 나왔다.
 
 안으로 안으로 들어와 맨 마지막 소금창고로 왔다.  나이 드신 부부가 소금을 걷고 계셨다.
이곳 저곳 내 딴에는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아저씨가 버럭 화를 내며 말씀하셨다.
 " 거 사진 고만 찍고 나가요.  남은 죽어라 일하는데 재미로 그렇게 사진 찍지 말고."
힘들게 일하고 계시는  당신의 생각이 옳으셨다.
 
 나는 카메라를 내려 놓았다. 아줌마가 일륜차로 소금을 나르려고 하셨다.  나는 성큼성큼 소금을 걷는 안으로 들어가 아줌마에게 일륜차를 받으며 말했다.

 "저, 일륜차 운전 잘해요. 제가 운반해 드릴께요." 받아서는 가볍게 운전해서 소금창고까지 끌고 가 쏟아 부었다.  소금창고에 붇고 다시 돌아오니 아줌마는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미안해서 어째요. 신발 다 버려요. 그만해요." 하셨다.  신발을 나중에 물로 씻으면 되니 걱정하지 마시라며 일륜차로 운반 하는 일은 내가 맡았다.  아저씨는 소금을 밀고, 아줌마는 소금을 모으고, 나는 소금을 나르면서 셋이 함께 일을 하니, 번쩍번쩍 금방 일이 됐다.  딱 네모칸 하나에 일륜차로 두 대가 나왔다.  일륜차 하나에서는 소금이 두 가마가 나온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아줌마가 저게 뭘 하겠나 싶은지 조금씩 담아 주시더니, 목장 일을 할 때 단련된 일륜차 모는 솜씨가 좋아 보이셨는지 나중에는 장정들 몫처럼 하나 가득 담아주셨다.

  뜨거운 여름에 소금 거드는 일은 땀을 흥건히 쏟게 했다.  힘은 들었지만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워 기분좋게 일을 거들어 드렸다.
일하는 중간에  아줌마가 힘들다며 냉커피를 타 주셨다. 염전에서 일하다 먹는 냉커피의 그 시원함은 여지껏 먹어본 냉커피 중 최고였다.  잠시 쉬면서 아줌마는 자식을 이야기며 이곳에서 가장 오래한 당신들의 36년 염부생활을 말씀하셨다.

  처음 남의 일꾼으로 들어와서 일했고 지금의 이 염전도 당신들 것이 아니라서 생산된 소금은 한 가마에 15,000원을 받으면 9000원은 당신들 몫이고, 6000원은 지주에게 돌아간다고 하셨다. 자식들에게 용돈 달란 말하지 않고 이렇게 소금을 만들고 살다 부부가  한 날 한 시에 죽었으면 그게 소원이라고 말씀하셨다. 젊어 보이셔서 연세를 여쭤보니 예순 다섯과 예순 셋이라고 하셨다. 네 자녀를 모두 출가 시키시고 두 분이 이렇게 오손도손 사시는 모습이 뵙기가 좋았다. 
 
 소금을 나르면서 사진들을 중간중간에 찍었다. 소금물에 비친 소금과 일륜차와 삽이 예쁘다는 나에게 그게 뭐가 예쁘냐며  조금 전에 화를 벌쩍 내셨던 아저씨는 웃으시며 많이 찍으라고 하셨다.

거의 두 세 시간 일을 했다.  숨이 찼다.  마지막 두 판이 남았다.  아저씨의 소금모으기가 가장 빠르셔서 마지막 남은 두 판은 아저씨와 내가 한 판씩 맡아서 소금창고로 날랐다.
소금창고로 오늘의 소금들은 모두 날라졌다. 일을 모두 마치니 아줌마는 얼음물을 따라주셨다. 뼈 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소금물을 빼라며 손과 발에도 물을 부어주셨다.

손과 발을 씻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비릿한 고향의 냄새가 났다.

아줌마와 아저씨는 오늘 너무 고생을 많이 했다며 이거면 일년은 먹을 거라며 잘 마른 쪽에서 소금 한 가마니를 담아주셨다. 아저씨는 차 트렁크까지 실어주셨다. 두 분의 마음을 고맙게 받았다. 아줌마는 다음에 포도 먹으러 꼭 오라며 당신의 헨드폰과 집 전화번호를 달력을 찢어서 적어주셨다. 염전에 다음에는 그냥 놀러오라고 하셨다. 아줌마와 아저씨는 염전에 남은 일들이 많이 남았다며 얼른 먼저 들어가라고 하셨다. 두 분께 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염전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노을이 지는 염전에서 젊은 부부가 소금을 걷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름다웠다.  사진을 찍어 드렸다.  돌아오면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때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혼자서 동주염전을 갔기에 그분들과 만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과 함께 왔을 때 나가라고 소리치시는 아저씨를 보았으면 예, 안녕히 계세요. 하고 되돌아 나왔지, 그렇게 첨벙첨벙 그분들 일에 함께 하겠다고 소매걷고 나서기는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주염전 발길을 돌렸던 그 날의 선택으로 오늘까지도 그분들과의 인연은 끈끈하다.
 
 그 뒤 홍노진(66), 심인자(64) 두 분들이 계신 동주염전을 이웃집처럼 자주 방문하는 곳이 되었다.  가을이면 포도를 사러 갔고, 아줌마 댁 앞의 탱자를 줏고 몇 차례에 걸쳐 소금들은 팔아 드렸다.  동주염전 소금의 진가는 소금을 사 간 분들이 김장을 담그면서 나타났다.  모두를 김장 맛있다고들 했다.  동주염전 소금으로 김치를 하던지 찌개를 끓이던지 하면 단 맛이 난다고 했다. 짠 소금이 달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우리의 말들은 참 감칠 맛 난다. 그 말이 마치 내 집 물건이 좋다고 하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소금 열 가마니를 실어서 묵직하던 차의 무게도 가볍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겨울에 다시 소금사러 갔을 때 김장을 담그다 배웅 나오신 두 분이 다정하게 집 앞에서 자세를 잡으셨다. 괄괄하시면서도 아저씨 말씀에 다소곳하신듯 하면서도 할 말씀 다하시는 지혜로우신 아줌마와 무뚝뚝하시고 가끔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리를 벅벅 지르시지만 뒤 끝이 없으시고 별 말씀 없이 빙긋이 웃으시는 아저씨의 모습이 편하고 아름다웠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큼 가슴 그득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어느날,  문득 찾아든 동주염전에서의 하루 인연으로   그 뒤 동주염전의 여러분들과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오늘도 나는 무엇인가를 선택한다. 지금 나갈 것인가? 무엇을 살 것인가? 누구를 만 날 것인가? 내가 선택하기고 하고, 타인이 내 시간과 세계로 뛰어들기도 한다.

뒤의 일은 추측은 할 수 있지만 알 수 는 없다. 순간 순간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알게 해준 동주염전의 그날 하루는 나의 뒷 날을 바꾸어 놓았다.  지금, 선택하는 일들이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 줄지는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 수록 세월을 잘 살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이 시간의 선택들은 그만큼 중요하고 귀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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