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염전에서 산신령과 뭉크를 만났다

최영숙 | 기사입력 2005/07/28 [00:00]

폐염전에서 산신령과 뭉크를 만났다

최영숙 | 입력 : 2005/07/28 [00:00]

   폐염전에 들어서면 하루가  금방 지난다.  세월에 부식 되어 가고 있는 한편에서는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이 있다.   그곳은  쓸쓸하고 흥미진진하며 이미지가 중첩되는 매우 다중적인 곳이다.

 어제는 바닥을 찍고 있었다.  처음에는 목단꽃 형상을 따라 찍었는데  산신령의 모습이 들어있었다.  사찰에 가면 삼신각에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셧타를 눌렀다.  바인더를 통해 다시 보았다.  더욱 자세한 모습의 인자한 산신령의 모습이 그 속에 있었다.  신기했다.
                  

 예전에 외국사진에서 본  흘러내린 계곡눈 속 사진에서 예수님을 찾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즐거웠다.  사물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만물상이 들어 있듯이 하나하나 형상들을 깃든 것을 볼 수 있다.  그럴 때면  입체파 그림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게가 앞 발을 치켜들고 위협한다.    게에게는 최대한 위협적인 동작이건만 보는 이에게 웃음을 짓게 했다.  게의 앞 발 앞에는  뭉크의 그림에 있는 절규하는 사람의  얼굴 형상이 보였다. 


염전 바닥은 여러 모습을 가졌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낙서를 한 듯한 장난스런 모습이었다.

 나는  최고의 미술전시장에 서 있던 것이었다.  일전에 덕수궁에서 만난 초일류화가들의 그림들보다 자연이 그려준 바닥 무늬들이 더 아름답고 신선했다.  조금만 시선이 비껴가면 다른 모습을 만드는 바닥 그림을 찾는 것은 즐거운 보물찾기였다.
 
 
위의 사진을 처음보았을 때 토끼처럼 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니 고양이의 모습이 좀 더 들어있었다.  고양이로 시선이 바뀌고는 토끼로는 잘 보이지 않앗다. 


 사람의 시선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의 사물이 토끼로 보이건, 고양이로 보이건 이는 순전히 내 주관이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사진중에 다른 모습들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자신의 살아온 색으로 감지하고 느끼고 살아갈 것이다.

 

 해태상들이 득시글하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하다.

 

보아뱀을 만났다.  코끼리를 품고 있다.   세상의 풍경은 보아뱀 뱃 속 같다.  새로운 시선을 요구한다.  과연 그 시선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 두근대는 심장만큼 두려움이 있다.

 

한무리의 곰들이 춤을 추고 있다. 곰발바닥의 무늬들만이 남아 있는 곳을 지났다.


  너울대며 춤추고 하늘로 오르는 비천상을 보았다. 포동에 들어서면 갯지렁이가 지나간 자리에서도 비천상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바닥만 보고 있어도 무한한 상상력과 즐거움을 주는 포도 폐염전에서의 하루가 지나갔다. 

 
 그곳은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지닌 곳이었다. 
 
 자연이 만들어준 최고의 예술 작품들을 만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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