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자~! 나알자! 날아 보자~!

해오라기난초

이정우 | 기사입력 2011/08/24 [07:18]

날자~! 나알자! 날아 보자~!

해오라기난초

이정우 | 입력 : 2011/08/24 [07:18]

여름 문턱에서부터 무성하게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 아이 정말 이번 여름엔 한 번 봐야 겠어!”
“올 여름에 볼 수 있다면 정말 행운일 텐데…….”
“정 안 되면, 야생화 하우스라도 가면 어떨까?”
“비상하는 날갯짓, 그 웅장함을 볼 수만 있다면…….”

▲     © 이정우


예전에 야생화 하우스에서 봤었다. 그땐 붉은 고무화분에 심겨져 있었고, 줄기가 가늘어 혼자 커다란 꽃을 지탱하기가 어려웠던지 휘청 휘어서는 옆의 꽃나무에 기대고 있었다. 가엾기도 하고, 갑자기 내 목이 타는 거 같기도 해서 눈길을 주다 만 기억이다.

▲     © 이정우

 
간절히 원하면 이룰 수 있다고 했던 말을 실감하는 기회가 왔다. 화요일. 내겐 다른 일정이 고정되어 있는 날이다. “해오라기난 보러 갈 건데요.” 만사를 제쳐 놓고 따라 나섰다. 두근대기도 하고, 도대체 어떤 녀석이 그리 인기가 많은지 한번은 꼭 봐야 할 거 같기도 했으니까. 비가 내렸고, 해는 나올 기색도 없었지만 뭐 나름 괜찮았다. 아주 어두운 하늘은 아니었으니까. 

▲     © 이정우


봤다.
함초롬히 꽃대 세우고, 양 날개를 활짝 폈다. 마치 조나단의 갈매기의 꿈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가는 꽃대로 많게는 세 송이, 두 송이씩의 꽃을 달고 거기다가 이슬방울까지 달고 있어서 일렁일렁 꽃대궁의 허리는 그야말로 위태로워 보였지만, 늠름하게 잘 버텨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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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라기, 해오리'는 '해(희다)+오라기(실이나 헝겊 따위의 가느다란 조각)', '해+오리('오라기'의 방언)'로 이루어진 말이다. 해오라기의 목 뒤에는 두 줄의 흰 실오라기 같은 가느다란 깃털 같은 것이 달려 있다. 이 하얀 실오라기 같은 것 때문에 해오라기라 이름 지었다한다. 그리고 '해오래비, 해오라비'는 흰 깃털을 가진, 오리와 비슷한 새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해오라기는 잿빛 몸체에 진남청색 날개에 흰 오라기 같은 장식 깃털이 두 줄 달린 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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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말은 [꿈에도 만나고 싶다]라는 애절한 사연이 숨어 있다. 일본에 혼기를 앞둔 남녀가 집안의 반대로 그 사랑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남자가 사는 동네와 여자가 사는 동네를 가로지르는 강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밤, 남자가 애인이 그리워 강가에 나왔는데, 강 건너편에 여자도 나와 있었다. 남자는 목청껏 여자를 불렀지만, 강이 깊어 둘을 만날 수 없었다.
 
드디어 남자는 손짓으로 여자를 부르다 물속으로 빨려들어 갔고, 여자도 따라갔다. 그 두 남녀가 빠진 강가에 피어난 꽃이 해오라기난초라는 전설이 있는데, 그렇게 강물에 투신을 해서라도 그 남녀는 사랑을 이루고 싶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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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이 지났다.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보호차원에서 줄을 쳐 놓고, 중간중간 무자비하게 밟아버리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로 돌멩이를 놓았지만, 흐린 날에 훌쩍 한 번 보고서는 지난날 하우스에서 본 해오라기를 봤을 때보다 더한 갈증을 느꼈다. 하지만 약속을 했다. 다시는 찾아오지 않기. 사진 함부로 내돌리지 않기. 꽃사진을 찍는 나로서는 카메라를 빼앗기거나, 등산화를 빼앗기고 맨발로 걸어가란 뜻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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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봤던 그 장소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또 해오라기가 산다는 소식도 들렸다.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정말로 해오라기 한 촉에서 핀 두 송이 꽃이 꽃등을 서로 기대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반가움, 고마움. 비록 철조망에 둘러싸여 일정 거리를 띄고 마주 서야 했지만, 너무 예뻤다. 강물에 떠내려간 두 남녀가 저렇게 다정히 등을 맞대고 환하게 웃고 있는 것만 같으니,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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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해야 할 개체는 당연히 보호해야 한다. 철조망을 쳐 놓고 보호를 하든, 새끼줄을 묶어 놓고, 들어가지 말라고 하든지 귀한 존재니까 잘 보살피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하지만, 그 귀한 식물이 어떻게 귀한지, 왜 보호해야 하는지를 깨닫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비상하는 날갯짓에서 두 남녀의 맑은 영혼을 그릴 있다는 얼마나 좋을까마는 내겐 아직 까마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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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라도 만나고 싶다는 내 소원이 이루어진 것처럼, 그 밭의 해오라기를 두루두루 예쁜 사랑 오래도록 해서 자손을 아주 많이 퍼트리기를 바랄뿐이다. 그래야 철조망에 갇히는 신세를 면하게 될 테니까. 내가 봤던 해오라기는 끝물이었고, 웬만하면 다 씨방을 달고 다음을 기약하는 중이었다. 혹여 내게 이 아이들이 어디에 있는냐고 물어볼 생각이었다면 묻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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