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가 생겼다~~!

<연재>쬐그마니의 산들꽃의 수다

이정우 | 기사입력 2008/10/04 [10:13]

놀이터가 생겼다~~!

<연재>쬐그마니의 산들꽃의 수다

이정우 | 입력 : 2008/10/04 [10:13]

하루세끼 밥 먹고 사는 모양새야 다 같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가끔 별식이 먹고 싶기도 하고, 또 가끔은 거르기도 한다. 늘 그날이 그날 같지만 결코 그날이 될 수는 없는 것처럼. 눈을 떠 멀리를 바라봐도, 의식적으로 땅바닥만 쳐다봤을 때도 뾰족한 별다른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내 놀이터가 생기기 얼마 전까지는. 

▲     ©이정우


처음이란 단어는 늘 그렇듯 자그마한 흥분을 준다. 누군가와의 첫 만남이었을 때도, 갈망하던 그 어떤 걸 처음 손에 쥐었을 때도. 갓 스물을 넘긴 푸름푸름한 아이들과 보조를 맞춰 걸었다. 버스가 그렇게 혼잡할 줄 몰랐고, 가까운 거린데 차가 막힐 수 있다는 걸 계산에 넣지 않아서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서둘러야 했기도 했지만, 앞뒤로 밀려가는 물결에 보조를 맞추자면 자연히 성큼성큼 걸어야 했다. 보폭이 좁은 나로서는.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강의실로 몰려갔고, 전날 강의실을 확인했는데도 십여 분을 헤매다 경비아저씨한테 도움을 청해야 했다. 정사각형 건물이 뺑뺑 돌아도 그 자리가 아니고, 무슨 미로 같이 헤매게 만들어 놨다.


▲     ©이정우


노랑머리, 까만 피부가 반짝반짝 눈부신 총각, 누리끼리한 중년의 아줌마 등등 골고루 섞인 교실은 그야말로 종합선물 세트 안에 든 작은 우주다. 첫날 자기소개를 하는데 나름 각오도 대단했지만 한 가지는 의견이 통일되었다. 중국어를 잘 하고 싶다는 거. 주욱 둘러봤는데 내가 제일 나이가 많다. 이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염려스러워 이 교실에 있는 사람 중에 나이가 젤 많다고 했더니 절대로 그렇지 않단다. 선생님께서. 늙었다고 하는 건 칠순을 넘겨 팔순을 바라볼 때 그리 이야기 하는 거고, 지금은 그런 말을 하지 말라신다. 고맙게도. 
 

▲     ©이정우


우왕좌왕 폭소를 자아내면서 수업을 받는다. 자신이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불쑥 내밀면 중간에 해석을 해서 다시 이야기를 이끌어야 하시는 선생님은 수업시간 내내 배꼽을 잡으신다. 비싸다고 해야 하는데 싸다고 자연스레 이야기 하는가 하면, 짧아서 싫다 해야 하는데 짧아서 좋다고 큰소리를 하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배운 낱말을 나름 조합해서 어설프게 말해 놓고 선생님이 또 뭐라 그러실까 눈치를 보기도 한다. 며칠을 그렇게 지나니 일본여인도 그리스여인도 갓 스물에 새댁이 되어 남편 따라 온 러시아여인도 모두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침이면 인사를 하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 간단히 궁금한 걸 묻기도 하고, 과자를 나눠 먹기도 한다.


▲     ©이정우


허겁지겁 교실에 들어서기 바쁘고 교문 밖으로 나오는 길 따라 걷기 바쁘던 내 시선이 조금씩 위로 가더니 엊그제는 혼자 놀았다. 전날 작은 호수가 있는 다른 길로 접어들어 봤는데 연꽃도 피어 있고, 잔디밭엔 낯익은 아이들이 빙긋 웃고 있었다. 디카를 들고 조금 더웠지만 땅바닥에 주저앉아 봤다. 흙도 잔디도 내 몸에 배인 느낌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얼마 만에 만난 주름잎이고 뽀리뱅이인지 모르겠다. 너무 흔해서 꽃 축에 끼워 주기도 뭣한 아이들을 이곳에선 아주 귀하게 봤다. 너무 오랜만에 사진을 찍어봐서인지 손끝에 닿는 감각이 서툴다.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     ©이정우


가을이라면서 고국에선 코스모스가 메일 속으로 날아들었고, 그 멜 속에서 코스모스향기가 같이 풀풀 날아 나와서 아찔할 정도로 깊은 향수에 젖었었는데 교정에서 본 손톱보다도 작은 꽃을 보고 난 후론 조금 편안하다. 교재만 해도 무겁고 힘겹지만 가급적 디카를 가지고 다녀야 할까보다. 넓어서 좋고, 가끔씩 눈에 띄지만 낯익은 아이들이 낮게 깔려 있어서 좋고, 꽃에 마음 주는 동안 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상황에 대해 마음을 놓아도 되는 곳이라서 좋다. 교정 안에서 만큼은 마음의 무장을 풀어놔도 괜찮을 거다. 메마른 산엔 정말로 그 흔한 고들빼기꽃 하나 없고, 들판엔 코스모스 한 포기가 없다. 어찌 해석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죄다 인공적으로 파다 심고, 화분 채로 줄을 세워 놓은 원예용 화초가 전부다.


▲     ©이정우


처음이었지만, 주름잎이나 괭이밥을 볼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을 하고, 또 조금씩 열대식물에 관심을 가져 봐도 좋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내가 눈을 크게 뜨면 뜰수록 내 놀이터엔 무궁무진한 놀잇감들이 숨바꼭질 하듯 바위 뒤에 혹은 나무 뒤에 숨어서 날 지켜보고 있을 거다. 우당탕한 소란한 타국인들에게선 용감해 질 수 있는 용기를 배우고, 내 놀이터에선 또 다른 식물의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 괜히 히죽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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